제자 옥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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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옥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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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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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목사 / 동네작은교회

감동이었다. 그리고 목사로서 반드시 봐야 할 내용이었다.  한 영혼에 대한 사랑… 제자 삼는 사역을 목회의 중심에 놓은 그의 목회가 얼마나 큰 영향과 파급을 끼쳤는지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켜 놓았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하고 담담하게 소개해 주는 영화였다. 보는 내내 나의 목회를 돌아보게 하였고 옥한흠 목사의 절절한 메세지들은 무게감 있게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한 목회자의 삶과 죽음이 이토록 가슴저미게 다가오고 같은 시대의 목회자들에게 고민과 숙제를 남겨 준다는 것은 우리들의 목회가 과연 정도를 걷고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과 믿음없음을 드러내기에 더욱 불편하고 힘들고 그러면서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옥한흠 목사의 사역과 사랑의 교회의 제자훈련은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강남시대를 연 8,90년대의 대한민국의 경제정책과 서울시의 발전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최적의 상황화된 목회유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목회철학과 제자훈련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와 열매들과 더불어 그가 부단히 싸워 왔지만 어쩔 수 없이 수단화 할 수 밖에 없었던 교회성장주의의 폐단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이 현실 앞에서 적잖이 당황해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권에서 신앙을 배운 세대들에게 사랑의 교회와 온누리 교회 등은 자랑거리며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들 교회가 하는 사역과 프로그램 등은 언제나 선진화된 사역이었고 신선했으며 심지어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고 싶었던 신앙의 형태였다. 이 강남권의 복음주의 신생교회들이 만들어 내는 기독교 문화라는 것이 그전의 고집스럽고 반 세상적이기도 하고 좀 후지다고  느꼈던 내가 당시 다니던 교회의 환경에서는 늘 선진 기독교 문화의 중심으로 다가왔다. 제자훈련이 분명 핵심이었지만 바깥에서 내가 본 그 교회들은 언제나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엘리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교양넘치는 교회들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영화에서 옥한흠 목사는 주일마다 마당에 가득 모여드는 교우들을 보며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이 많은 자들이 제자훈련을 하는 자신의 교회에 모여드는 것을 보며 어떻게 저들을 양육하고 훈련할 것인가 두렵고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내린 목사로서의 결단은 매주 20시간이 넘는 설교준비였다.
탄탄한 훈련과정과 강남거주인의 입맛에 맞는 문화적 코드를 담아낸 프로그램 그리고 매주 목숨을 걸며 준비한 목회자의 설교가 있는 교회…  어떤가?

제자 옥한흠을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감동도 먹었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게 되니 좀 뜨아 해 졌다. 시작은 제자훈련이었는데 결론은 교회성장이었던 것이다. 3000억 짜리 예배당 건물이 마지막 장면인게 적절한 메세지였다. 좌회전 깜빡이 키고 우회전 했다는 딱 그 재미없는 표현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운전대를  이제는 대놓고 우회전만 하는 자가 뒤를 이어 잡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그 무한 궤도를 돌고 있는 그 교회를 우려와 염려의 마음으로 가슴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제자 옥한흠! 그는 예수의 제자였다. 예수의 제자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예수의 교회를 세우려 몸을 사리지 않고 살다 갔다. 이제 그의 제자훈련이 옳고 그른지는 고스란히 제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침몰하는 한국교회라는 거대한 배 안에서 우리는 제자들의 부활신앙을 보고 싶다. 그는 예수를 따라 죽었는데 그의 제자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증인이 아니라 성공과 승리주의자로 땅끝까지 가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땅끝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분이 아니라 마지막 날 무저갱에 던져질 존재 옆에 서있는 우리들이 아닐까 심히 두렵다. 내가 낳은 제자가 나의 제자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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