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도전!! ‘폐지 줍는 노인들의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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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도전!! ‘폐지 줍는 노인들의 협동조합’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4.11.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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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자원협동조합’ 이준모 목사, “노인복지 사각지대 돌볼 수 있습니다”

# 인천 계양구에서 사는 올해 일흔 여섯의 김OO 할머니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어둠이 깊은 거리로 나선다. 밤 사이 사람들이 내놓은 폐지를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서다. 요즘에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많아져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하다.

게다가 김 할머니는 정부의 생활보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몸져 누워있는 쉰 넘은 아들, 여기에 연락도 잘 닿지 않는 자녀들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헌 유모차에 폐지를 가득 싣고 고물상에 팔아봐야 하루 수입은 7~8천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아픈 허리와 다리. 하지만 하루도 쉴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이면,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들을 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안타깝지만 당장 도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12.2%로, 이 가운데 김 할머니와 같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약 175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더구나 폐지를 주워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제도적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 '실버자원협동조합' 조합원들과 이준모 목사(오른쪽에서 두번째).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긴 한 목회자가 앞장서 지난 7월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결성해 관심이다. 노인 25명이 직접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실버자원협동조합’이 그곳으로, 현재는 인천광역시에 사회적 협동조합 등록 신청을 앞두고 있다. 100여명 지원자 중 조합원을 선정하는기준은 지원자가 생계형 수집인지 아닌지였다.

그런데 ‘실버자원협동조합’이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했지만,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더구나 다른 사회적 협동조합과 달리 노인들, 그것도 폐지 등 재활용품을 팔아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인들이 조합원이라는 점에서 주변의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

‘실버자원협동조합’을 처음 제안하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인천 내일을 여는 집' 이사장 이준모 목사는 인천지역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또 한국기독교장로회 복지재단 실무책임자로 전국을 무대로사역도 하는 등 사회복지 분야에서 잔뼈가 굵다. 지난 7월에는 사회복지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위한 협동조합을 구상한 것이다. 이 목사는 아내 김영선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해인교회 무료급식소 노인들을 돌보면서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분들만을 위한 사역이 없다는 것을. 왜 나이가 저렇게 많은 할머니가 성인 3끼에 해당하는 식사를 하는지를.

다행히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인건비와 사업비를 지원받게 되고, 해인교회가 또 예산을 더하면서 협동조합 준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협동조합의 필요와 가치가 무엇인지 교육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또 무턱대고 노인들이 모아온 폐지를 담당직원들이 모아 대신 팔아주도록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시행착오였다. 초창기에 그럴 경우 활동 폭을 넓히지 못하고 재활용품만 모으다 끝나 버릴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 목사는 노인들과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당장 하루하루 살기도 막막한 노인들에게 위안과 소속감을 주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함께 식당밥도 먹으며 회의도 하고, 오랜만에 서울 곳곳을 돌며 구경을 하고, 온천여행을 가 좋은 숙소에서 잠도 자고….

▲ 생계를 잇기 위해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노인들은 협동조합과 함께하며 모처럼 서울 나들이도 할 수 있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우리나라 사회복지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생한 만큼 수익도 얻지 못하고 늘 교통사고 노출돼 있죠. 사연에 따라 복지혜택을 못 받는 분도 상당수 있습니다. 이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방법이 협동조합이 될 수 있지요.”

이 목사는 노인들에게 협동조합 교육을 할 때마다 “우리는 협동조합”,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구호처럼 외치도록 했다. 조합원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가입비 5천원, 한달에 1천원의 조합원비도 부담하고 있다.

조합원 강00 할머니는 “목사님이 사장이 아니라 같은 조합원이라 좋습디다. 모두가 똑같이 한 표를 갖는대요. 우리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요?”라며 목소리를 돋운다.

‘실버자원협동조합’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재활용품 판매를 위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세대로라면 보통 폐휴지 1Kg당 60~70원을 받는다. 하지만 시세를 잘 몰라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협동조합이 도울 수 있고, 또 폐휴지를 모아 대량으로 팔면 단가를 올릴 수도 있다.

또 협동조합은 학교나 교회 등 단체들과 연계해 재활용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실버자원협동조합’은 20여 교회에 재활용품 수거함을 설치해 두고 있다.

앞으로는 국토계획법에 따라 고물상이 상업지역이나 주거지역에서 이전할 경우, 노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는 데 대한 대책도 협동조합에서 찾을 가능성도 있다.

▲ 이준모 목사와 재활용품 수집 노인 25명은 지난 7월 '실버자원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은 소속감을 높이며 직접 회의와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첫 발을 내딛은 ‘실버자원협동조합’이 자칫 좌초할 수 있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반 사회적 협동조합과는 조합원들의 특성상 꾸준한 외부 지원이 중요한 데, 인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이 12월을 끝으로 끊기게 된다. 일년간의 사업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이에 협동조합은 인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업 연장의 필요성을 알리고 예산지원을 요청해둔 상황이다.

이준모 목사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전국 교회의 참여와 관심도 요청했다. 교단과 교파를 넘어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 데 교회가 연대한다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실버자원협동조합’이 모델로서 성공한다면, 전국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들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교회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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