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할 때 더 큰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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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할 때 더 큰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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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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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 / 새에덴교회
힐데브란트를 아는가. 그는 AD 11세기 경 교회의 부패와 타락한 현실을 염려하면서 몇 사람의 친구와 함께 클리니 수도원에 들어가서 종교개혁을 꿈꾸며 눈물로 기도했다. 당시는 신교나 구교나 다 하나였던 때였는데 원래는 기독교가 영적으로 모든 구라파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사실상 교황청은 각 국가를 강제할만한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래서 교황청은 주교를 임명하거나 사임시킬 수 있는 서임권을 각 국가의 황제들에게 양도했다.

서임권이 국가에게로 이임되자 황제와 제후들이 자기들 멋대로 성직 매매를 하기 시작했다. 또 황제와 영주들은 성직자들에게 세속적인 정치가로서의 권한까지 부여했다. 그러자 교회는 거룩성과 영광성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이 되어 버린 세속적인 공동체가 되어 버렸다.

바로 이러한 때에 힐데브란트는 이 땅에 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로의 회복을 위한 개혁의 꿈을 꾼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힐데브란트에게 교황이 되어 종교개혁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해 보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교황이 될 자격이 없다고 사양하며 뒤에서 기도로 돕겠다고 친구들에게 양보를 하였다. 그리고 친한 친구인 니콜라스 2세를 추천 했다. 그런데 그가 교황이 된 후에 2년 만에 죽어 버렸다. 그러자 다시 알렉산더 2세라는 경건한 친구를 교황으로 추천 하였다. 그러나 그도 얼마 만에 죽어버렸다.

그러자 수많은 성직자들과 로마의 백성들이 구름떼같이 모여들어서 “힐데브란트 당신이 교황이 되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도 힐데브란트는 “내가 교황의 자문역은 할 수 있을지언정 교황은 할 자격이 없다. 나는 기도할 테니 다른 사람을 세워달라.”라고 하며 끝까지 사절하며 양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들과 로마의 백성들이 힐데브란트를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강제 구인하여 만장일치로 교황으로 추대하였다. 바로 그가 교황 그레고리 7세였다.

이렇게 교황이 된 그는 마침내 성직자들의 영적 권위와 교회 질서부터 확립하였으며 서임권을 다시 회복했다. 그런데 그 때 신성로마제국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에게 항의를 하며 밀라노 대주교를 자기 마음대로 임명을 하지 않는가. 이 일로 황제가 그 추운 겨울날 교황 앞에 3일 동안이나 무릎을 꿇었던 카놋사의 굴욕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은 평신도로 이양이 된 교회의 권위를 다시 성직자가 되찾아온 하나의 종교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참된 교회 모습을 세워갈 수 있었고 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위대한 종교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힐데브란트의 양보에서 나온 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먼저 양보하고 끝까지 사절하다가 교황이 되었을 때 오히려 더 큰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계의 모습은 어떠한가. 평신도건, 지도자들이건 서로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고 높아지려고 하지 않는가. 마치 저 여름날 비를 맞고 겁 없이 자라는 들녘의 들풀처럼. 그들은 얼마나 제 잘난 듯 서로 높이 자라려고 하는가. 그러나 그 들풀들은 가을의 된서리만 한 번만 맞아도 다 수그러들고 쪼그라들어 버린다. 이건 활엽수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자기 과시와 망상에 빠진 소인배적 지도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지고 교계가 진통을 앓고 있지 않는가.

오직 눈 내리는 겨울에도 독야청청 한 것은 상록수뿐이다. 모든 활엽수가 떨어져 버리고 들풀들이 쪼그라들어 버릴 때도 상록수만 변함없이 산을 푸르게 하고 있지 않는가. 바로 영적인 내공과 깊은 영성을 소유한 대인이 이런 지도력을 발휘한다. 그런 대인은 힐데브란트처럼 그 깊은 영적 내공과 영성으로 양보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럴 때 그에게 더 큰 힘이 부여되고 거대한 리더십이 발휘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 힐데브란트와 같은 진정한 영적 거인은 어디에 있는가. 혹독한 영적 겨울을 맞고 있는 한국교회는 새벽 눈보라와 된서리에도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 그루의 상록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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