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비판은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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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비판은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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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0.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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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회학박사인 톰 레이너 교수는 ‘목회자가 직면하는 12가지 도전’ 중 하나에 대해 “‘나는 목회자를 비판, 견제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람을 감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고, 실수한 것에 대해서 비판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목회 의도를 곡해하여 공동체를 해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비판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은 목회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옛부터 이름을 숨기고 거는 글을 ‘괘서(掛書)’라고 했다. 익명으로 벽 같은 곳에 글을 붙어 남을 비방하거나 모함하는 데 많이 사용했다. 익명으로 작성했기 때문에 범인을 잡기도 어려웠지만 무고한 자가 범인으로 지목될 수도 있었다. 이에 임금 정조는 괘서를 찢고 태워도 이해해주는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조의 할아버지이며 탕평책으로 유명한 영조는 괘서를 어떻게 조치했을까? 영조 31년, 나주 객사에 조정을 비방하는 괘서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조정을 비난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조가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유언비어를 포함해 영조의 치세 전체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조는 30년 동안 나라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치세가 한순간에 부정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을 잡고보니 전남 나주에 유배 중이던 윤지(尹志)라는 자였다. 그는 영조 즉위 당시 노론에 의해 처단된 소론 일파였다. 이런 원한 때문에 윤지는 나주의 객사에서 영조와 조정을 비방하는 괘서를 붙였던 것이다. 결국 윤지는 한양으로 압송, 처형당했고 아울러 소론 일파도 척결 당하게 된다. 이후 탕평책은 와해되고 노론 일파에 의해 조정은 전횡 당하게 되며,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붕당이 심화되어 조정이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비판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다. 그들은 어느 조직이든 장단점을 파악하는 데 빠르다. 그리고 공석에서 단점을 제대로 공략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단점을 그토록 열심히 공격할까? 비판을 통해 자신이 높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 때 후보토론회에서 상대방을 격렬하게 비판할 때 비판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남을 칭찬하고 인정하는 것은 밋밋해서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 그것도 날이 선 언어와 확고한 태도로 비판할 때 그 사람은 각광 받기 딱 좋다. 그래서 청년들은 이런 비판자에게 끌리곤 한다.

교회를 비판하는 자들 중에 이런 공명심이 앞서는 자들이 참 많다. 한국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교회의 개혁은 요원해 보일까?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고전 13:1)라고 말했다.

비판만으로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없다. 먼저 사랑을 담아야 한다. 사랑 없는 비판의 말은 결국 누군가를 찌르는 비수가 될 뿐이다.

기억하자. 히틀러는 누구보다도 비판을 잘했다. 그래서 세계를 2차 대전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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