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팽목항에 남아 주세요”
상태바
“남은 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팽목항에 남아 주세요”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4.06.16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호 참사 후 60일, 유가족을 위로하며 팽목항 지키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남은 실종자 수 12명. 세월호 참사 60일 째를 맞이했지만 실종자 수를 가리키는 번호판은 그대로였다. 292명의 희생자를 시신으로 대면하기까지 팽목항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급박하게도 흘러갔다.

지금 남은 가족들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보다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가족들은 자신의 자녀를 끝까지 마주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애타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실종자를 추가로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와 월드컵으로 인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흐려질 수도 있는 이 때 진도 팽목항을 다시 찾았다. 목포에서 다시 진도버스터미널로 마을버스를 타고 도무지 항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구부정한 시골 길을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확 트인 바다가 펼쳐져 있는 진도 팽목항에 도달한다.

▲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간직한 진도 팽목항에는 흰 부스들이 빼곡히 자리해 있다.

13일 오후, 도착한 팽목항 항구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야속할 정도로 고요했다. 수많은 생명을 무참히도 삼키어버렸지만 두어 달이 지난 지금,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듯 남겨진 이들의 애타는 마음을 뒤로한 채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선창가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흰 부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팽목항 부두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도 불구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선착장에는 아이를 기다리며 가져다 놓은 유품과 간절한 소망의 글귀가 담긴 노란색 리본들만이 쓸쓸히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팽목항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고 있었다. 부스를 지키는 봉사단원과 취재 기자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몇몇의 인원만이 부두를 오가고 있었다. 유난히도 고요한 이곳 팽목항에서는 소리를 내거나 숨 쉬는 것마저 죄스러울 정도의 적막이 감돌았다.

팽목항 빽빽이 들어선 수많은 부스 중에서도 유난히도 활기를 띄는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간혹 팽목항을 오고가는 대부분이 이 부스에 멈춰 서 물품을 받아갔다. 부스를 지키는 서너 명 남짓한 봉사단은 어떠한 말도 인사도 없었지만, 너무나도 당연하단 듯 물품을 건넸다.

대신 부스에는 진도군교회연합회,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이름으로 자리한 ‘힘내세요! 한국교회가 함께 합니다’라고 써진 플랜카드가 펄럭이면서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위로의 인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 팽목항 한켠에 마련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부스에는 '힘내세요! 한국교회가 함께 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날 진도시기독교연합회 봉사단 부스에는 몇 명의 봉사단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봉사 창구를 단일화한 뒤에는 합동, 통합, 백석, 감리회, 기장 등 5개 교단의 목회자들이 돌아가면서 봉사를 실시한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 교회 차원에서는 진도군교회연합회와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을 창구로 물품과 재정을 후원해 실종자 가족들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장기간의 봉사활동으로 심신이 지친 봉사원들은 봉사 후 귀가 길에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당하기도하고 과로로 몸이 위독해져 입원하게 되는 등 현장에서 봉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고 발생 첫날부터 오늘까지 현장을 지키며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진행해온 팽목교회 김성욱 목사(51)는 한국 교회의 이름으로 후원 받은 물품을 분류하고 배분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해왔다. 오랜 기간 봉사 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시신이라도 찾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 견줄 수야 있겠느냐”며 씁쓸한 미소로 답했다.

김 목사는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부스를 방문한 이에게 어떠한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간단한 목례로 방문객을 맞고 필요 물품을 바로바로 전달했다. 어떠한 위로의 말이나 인사가 이들에게 오히려 상처로 남을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참사 첫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팽목항에 나와 봉사하고 있는 팽목교회 김성욱 목사.

이제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처음 팽목항에는 생존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로 가득했다. “이들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꺼내기도 어려웠다”며 운을 뗀 김 목사는 그간의 팽목항에서 지켜본 유가족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유가족이라고 부르기도 조심스러워 가족이라고만 불렀다. 실종자가 60여명 정도 남았을 때는 시신 인양이 안 될 때 오히려 이들의 기대감이 높았다. 그래도 내 자녀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은 차츰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구조된 시신이 자신의 자녀이길 바라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시신을 찾았다는 실종자의 가족의 발걸음이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면서 “그들을 본 순간 아픔 속의 위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실종자 가족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론 절망적인 상황을 호소하기도 했다. “어느 날 실종자 가족이 오더니 자원봉사자들에게 끝까지 팽목항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더라. 안타까운 마음에 절박한 마음으로 끝까지 봉사하겠다고 대답했다”고 말하는 김 목사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졌다.

▲ 한국기독교연합동사단이 진도 팽목항을 지키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날도 실종자 가족들과 잠수사들에게 전달할 물품을 분류하던 그는 부스를 찾는 이들이 처음보다는 많지 않지만, 보유하고 있는 분량은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곳에서는 아무리 좋은 물품일지라도 일회용의 개념일 수밖에 없다”며 “사용하면 다시 씻거나 빨아서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물량의 소비가 있다. 하지만 현재는 관심이 적어지면서 새로운 구호 물품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실질적인 실종자는 12명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가족들은 4~50명에 달하는 수가 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고 있다. 또한 잠수부와 해군, 해경을 포함하면 170명에 가까운 수가 머물고 있어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요청된다.

김 목사는 “지금은 후원이 많이 줄어들어 넉넉하지 않은 물량으로 인해 최소분량만 지급하고 있다”며 “더욱이 공급이 부정기적이므로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이라 앞으로 얼마나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 감리회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는 공간을 마련해놓았다.

또한 김 목사는 기독교와 한국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전했다. 많은 교회의 물품 지원과 후원을 통해 팽목항에서 주도적으로 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내용보다 부정적인 보도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각 지역과 현장에서 많은 교회들이 봉사하고 있으며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며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현장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언제까지 봉사활동을 지속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마지막 남은 실종자 한명을 찾을 때까지”라고 나즈막이 답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한국교회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로마서 말씀을 푯대로 마지막까지 묵묵한 섬김으로 남은 가족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길 기대해본다.

▲ 한 부스에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표현해 놓은 글귀가 가득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