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앞에 더 흩어진 교회, 구심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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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앞에 더 흩어진 교회, 구심점이 없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4.05.2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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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주일도 엇갈린 채 기도회만 '우후죽순'

세월호 참사 앞에 한국 교회가 모처럼 연합의 기회를 잡았다. 국가적인 재난과 슬픔 앞에서 서로 손을 내밀며 화합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엇갈린 욕심들이 드러나면서 한국 교회는 ‘애도주일’조차 하나로 지키지 못한 채 구심점 없는 ‘표류’를 계속하고 있다.

# 애도주일 18일? 25일?

세월호 참사 앞에 기도회로 모인 지난 9일 안산제일교회에서는 “한국 교회가 마음을 모아 애도주일을 지키자”며 18일 주일에 공동설교문을 배포하고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날 발표된 애도주일은 지난 7일 감리교 감독회장실에서 모인 ‘세월호 참사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교단협의회’ 논의 과정에서 합의됐다. 이날 교단장과 단체장들은 안산과 서울에서 각각 기도회를 열고 18일을 애도주일로 지키는 한편, 모금운동과 돌봄사역 등에 나서기로 했다. 공동기도문과 설교문도 공유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9개 교단장들은 교단장협의회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5월 25일을 애도주일로 25일부터 31일을 애도주간으로 선포했다.

이러한 혼선은 교회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9일 예배에 참여한 안산시기독교연합회와 안산 지역 교회들은 18일 한국교회희망봉사단 등 세월호 참사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위원회가 만든 공동설교문으로 ‘애도주일’을 지켰다. 예장 백석 총회도 이미 9일 예배 후 공지된대로 18일을 애도주일로 보냈다.

그러나 기타 교단들은 애도주일에 대한 공지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목회서신을 통해 세월호 관련 애도 일정을 공지한 감리교를 제외한 통합과 고신, 침례교 등은 “교단장의 열정으로 인해 21일 금식기도회는 참석하지만 애도주일 등 기타 활동에 대해 전혀 들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심지어 통합 측 한 관계자는 “애도주일에 대한 논의가 없었으며, 우리가 소속된 기독교교회협의회 공동설교문에 따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왜 결속력이 없나

교회협, 한교연, 한기총 등 연합기관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한국 교회는 국민적 참사 앞에 한 목소리도, 한 마음도 모으지 못했다. 모금 창구도 제각각이고 기도회도 수차례 우후죽순 열렸다. 성명서도 모두 다른 내용들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처럼 한국 교회가 마음을 모아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돕고 장기적인 돌봄 사역에 나서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한교봉, 한목협, 미래목회포럼 등 연합단체 주도의 모임과 감리교, 통합, 합동 등 대형교단 중심의 모임으로 이원화 됐던 것. 9일 안산기도회가 단체들이 연합한 한국교회위원회가 주도했다면 21일 기도회는 교단장협의회 주도로 단체들의 공동개최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한국 교회의 연합활동은 10여 개의 전통있는 중대형 교단들만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총무들을 배제한 이 모임에 대해 최근 열린 군선교 총무단 모임에 참여한 11개 교단 총무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1년 임기의 교단장들이 독자적으로 나선 것이라며 실제 사무와 행정의 중심에 있는 총무들에게는 귀뜸조차 없었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더불어 교단장협의회에 참여한 9개 교단 총무들조차 21일 기도회와 애도주일 등 세월호 관련 논의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한마디로 몇몇 교단장들과 특정 언론사, 특정 단체 인사의 합작품이라는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세월호를 통해 한국 교회가 모으려 했던 연합의 구심점만 흔들리고 말았다. ‘봉사와 섬김’을 매개로 하나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쳐 버린 것.

교계 내부에서는 세월호 관련 애도 분위기가 ‘촛불집회’ 등 반정부 시위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종교집회는 안 된다는 ‘정교분리’ 주장 등 근본적인 교회의 공동책임과 회개보다 정치와 이념적으로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세월호’는 교회의 이벤트에 사용될 소재가 아니다. 생명을 존중하지 못한 문화,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사회, 세상을 바르게 이끌지 못한 교회의 처절한 회개만이 해답이다.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책임있는 진상규명과 후속조치가 필요하지만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뼈를 깎는 자성이 없이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없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대표회장 김명혁 목사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죄가 만들어낸 끔찍한 참사임을 깨닫고 이타주의로 생명주의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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