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 설친다? 신학만 바로 알면 ‘백전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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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이 설친다? 신학만 바로 알면 ‘백전백승’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4.03.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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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부터 평신도까지 쉽게 읽는 김동건 교수의 ‘신학이야기’

우리 삶의 모든 질문 ‘성경’에 답있어... 단 ‘신학’이 전제돼야
21세기는 기독교의 위기, ‘신학운동’이 한국교회 살리는 대안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풀리지 않는 의혹이 있다. ‘세례를 받은 후에 죄를 지으면 용서 받을 수 있을까?’, ‘’크리스천이 이혼을 해도 될까’, ‘죽은 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까?’ 참 궁금한 이야기지만 막상 물어보자니 믿음이 부족한 것 같고, 신앙의 수준이 낮은 것 같은 회의감이 든다. 이런 해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 1년 간 한 일간지에 ‘신학강좌’를 연재한 영남신학대학교 김동건 교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성경을 보라”고 답한다. 성경 속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다는 것.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김 교수는 “‘신학’이 없으면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성경의 내용을 전체적이고 조화롭게 보려면 반드시 신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신학적 기초가 없으면 성경에 대한 지식은 모자이크가 되고 전체를 통일성 있게 볼 수 없다.

또 신학은 삶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답해준다. 신앙과 삶의 일치를 이끄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학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변화하는 시대에 쏟아지는 질문들에 응답하려면 ‘신학’을 알아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기독교에 대한 도전이 거세지는 시대에 흔들림 없는 믿음과 확신 있는 답변으로 대응코자 한다면 신학의 무장은 기독교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 평신도가 신학알면 피곤하다?

대한기독교서회가 펴낸 ‘김동건의 신학이야기 –모든 사람에게’는 어려운 신학을 쉽게 만들어 놓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신학은 오랫동안 공부한 학자, 혹은 목사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같은 관점에서 김동건 교수의 ‘신학이야기’는 일단 누구나 쉽게 신학을 맞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신학은 무엇인지, 신학의 토대가 되는 성경은 어떠한 것인지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 이어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막연하게 배워왔던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화 시켜준다. 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그의 노력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가 신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님을 잘 믿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과거 한국 교회 안에서는 ‘평신도들이 신학을 많이 알면 목사가 피곤하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곤 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신학 자체가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가 신학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면 신학공부를 잘못한 그 평신도의 인격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대로 공부한다면 그 평신도는 목회자의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이고, 교회를 위한 훌륭한 영적 후원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만큼 신학은 신앙을 이해하고 행함에 있어 중요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다만 어떻게 쉽게 신학에 접근하느냐가 과제였고, 김동건 교수는 ‘신학이야기’를 통해 친근한 신학을 선물했다.

# 신학이 없으면 ‘신앙과 삶’ 분리

신학(Theology)은 ‘신’(theos)과 ‘말’(logos)이라는 그리스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문자적으로 신에 대한 이론이라고 정의된다. 신학이 생겨난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비한 기독교’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해야 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이해시켜야 했다. 걸음마 수준이었던 신학은 4세기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체계화되고, 교리적 안정을 찾아갔다. 종교개혁 이후까지 발전을 거듭한 신학은 20세기 들어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는 의미, 학문적 작업, 교리와 교파가 지향하는 신앙의 이론작업, 목회자가 되기 위한 교육과 훈련 등의 의미로 확대됐다. 오랜 역사만큼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어느 시대이건 평신도가 신학적으로 탄탄할 때 교회가 건강했다”며 “평신도가 신학적 토대를 갖지 못하면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교회는 사회적 역할을 상실한다”고 경고했다. “무엇보다도 신학이 약하면 이단에 쉽게 휩쓸리며 교회가 약해진다”고 지적하면서 오늘날 교회가 흔들이는 이유를 ‘신학의 부재’로 꼽았다.

# ‘삼위일체’ 그냥 믿으라니...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삼위일체’의 개념. 더불어 인간인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이고, 그는 또 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오래도록 남는다. 혹자는 쉽게 설명할 수 없으니 “그냥 믿으라”고 말한다. 그냥 믿다보니 확신이 흐려지고 신앙이 흔들린다.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으니 삶은 신앙과 동떨어지고 만다. 신학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동건 교수는 “삼위일체는 3=1이라는 공식이 아니다”고 말한다. 숫자로 이해하면 삼위일체는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교리가 된다는 것.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라면 결국 삼위일체의 핵심인 ‘하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는 “하나는 숫자가 아니고 세 위격이 함께 연합해서 가지는 공동체성을 의미한다”며 “성부는 성자와 성령 안에 계시고, 성자 역시 성부와 성령 안에 전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로 이해하라”고 설명한다.

삼위일체의 개념대로라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가 정말 신인가요? 인간으로 보아야 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막연한 믿음이 불러온 의문이다. 물론 이 같은 질문에 “예수님은 참 인간이며 참 하나님이지요.”라고 대답하는 평신도들이 있다. 단순한 답변은 가능하다.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곧 말문이 막혀 “그냥 그렇게 믿으세요.”라고 면박을 주고 만다. 역시 신학이 부족한 탓이다.

김동건 교수는 “예수님은 분명히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 어린이의 성장과정을 거치며 인간이 겪는 질고와 고통을 느끼며 살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내려가면 “인간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자신들이 오랫동안 고백해온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 성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 중에서 그를 ‘신’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러한 확신은 ‘부활사건’을 통해 완성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었다는 확신은 제자들을 순교의 현장으로 이끌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

막연한 믿음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정리된다. 니케아 회의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근본 동일한 본성”이라는 것을 교리화 했다. 이어 451년 열린 칼케돈 회의에서는 “예수님의 두 본성인 인성과 신성은 분리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고, 혼동되지 않고, 섞이지 않는다”는 교리를 확정했다.

# 종말의 시대, 신학만이 해답

이처럼 신학을 조금만 알면 설명하기 쉬운 것들에 대해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김동건 교수는 현대사회의 발전과 변화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답하고 있다. 고난과 축복의 문제, 존엄사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 세상을 향한 크리스천들의 책임, 기독교가 말하는 ‘자유함’에 대한 의미 등에 대해 설명한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적절한 신학적 행동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펼친다. 자연과학과 기술주의의 발달, 예측 불가능한 종말론적인 시대는 기독교를 위기고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학의 훈련을 강조한 김 교수는 “각 교단의 총회와 노회, 신학교 등이 연합해서 개신교 전체를 아우르는 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시대와 대화할 수 있는 신학을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와 대화성을 상실한 신학은 공허하다는 것. 또 기독교인들로부터 신앙과 삶의 이원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신앙과 삶’을 연결할 수 있는 신학연구소의 활성화도 제안했다.

그는 “21세기는 기독교에 어려운 시기다. 신학이 약하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상실하고, 신자들의 신앙이 흔들린다. 신학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며 “이 책이 신학운동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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