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용된 아론의 지팡이는 파라오와 이집트의 자랑이었던 나일 강을 피로 물들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했던 이집트를 처벌하는 도구가 되었다(출 7:15-20).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기 전에 모세에게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라"(출 7:15)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선지자를 부르실 때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명령하신다. 선지자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하나님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왕상 17:2-4)고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신다.
유다와 아람의 연합군의 예루살렘 공격 앞에서 유다 왕과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사 7:1-4)고 말하라고 명령하신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말씀을 주시고 선지자가 알아서 해석 적용하도록 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적용할 수 있는 능력도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나일 강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한 번에 죽을 수도 있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빠뜨려 죽게 한 나일 강을 핏물로 바꾸심으로써 그 강과 그 강을 섬기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복수하신다(시78:44). 당대 고대 세계에서 절대 권력을 자랑하던 이집트는 그 심장부인 나일 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일격을 당하는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지팡이를 사용하셔서, 나일 강의 신 하피와 오시리스, 크눔이 아무 힘이 없으며 도리어 이집트인에게 재앙과 같은 존재임을 입증하셨다. 하나님이 이집트에 주시는 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의 신들에게도 주는 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민 33:4). 하피는 나일 강의 주기적 범람을 상징하는 신이다. 하피는 나일 강의 삼각주 평야에 퇴적물을 가져다주어 비옥한 농지가 형성하기 때문에 농경의 신으로도 여겨졌다. 하나님 앞에서는 황소의 형상을 지닌 하피 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나일 강을 핏물로 바꾸심으로써 이집트의 번영의 기초가 되는 나일 강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나일 강을 핏물로 바꾼 사건은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 평야를 상징하는 신 오시리스를 하나님께서 정복하신 사건이기도 하다. 나일 강을 혈관으로 가지고 있다는 오시리스도 황소나 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삼각주 평야에 씨를 뿌리고 나일 강의 물을 줄 때 싹이 나고 곡물이 자라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이 씨앗이 오시리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나일 강이 범람하는 것은 오시리스의 죽음으로, 그 결과 곡물이 자라는 것은 오시리스의 부활로 여겨졌다. 그래서 때로 하피 신과 오시리스 신이 동일시되기도 한다. 오시리스는 나일 강 덕분에 자라는 초목을 상징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경쟁자 세트 신이 오시리스의 몸을 조각내어 나일 강에 뿌린 것은 곡물을 나일 강 평야에 뿌리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 강의 범람을 오리시스 신이 그의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현상이라고 여겼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집트는 나일 강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준 선물이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크눔은 나일 강의 원천인 카타락트(폭포지대)를 지키고 만물을 창조하는 신으로서 뿔이 난 숫양 모양으로 묘사된다. 크눔 신을 모신 신전이 있는 아스완은 나일 강의 신 하피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사용하셔서 나일 강을 핏물로 바꾸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나일 강의 생물들이 모두 죽게 하심으로써 하나님만이 참된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입증하셨다.
이집트 사람들의 생명의 젖줄인 나일 강이 핏물로 바뀐 사건은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나일 강은 이집트인들에게 풍성한 곡물과 많은 물고기를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신 첫 번째 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사건이었다. 나일 강을 절대 신뢰하면서 살아왔던 그들의 가치관과 신앙관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는 그들이 섬기고 자랑하던 신들이 모두 피범벅이 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절대자 노릇을 하는 모든 우상을 죽게 하시는 분이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