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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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도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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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1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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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석 찬 목사 / 예따람공동체

2월 16일, 기독교연합신문은 기윤실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13년 한국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내용을 자세히 기사화했다. 결과를 요약하면 5점을 기준으로 할 때 2.62점이었고, 19.4%만이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고 했다. 80.6%가 신뢰하지 않는다. 10명 중 2명만이 신뢰한다는 것인데, 중간정도가 3점인 것으로 보아 평균 이하의 점수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4명 중 1명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기독교인 스스로도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 셈이다. 문제는 지난 6년 동안의 조사 결과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비기독교인이 신뢰하는 종교는 가톨릭이 47%, 불교가 38%인데, 개신교는 12.5%에 불과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의 증상은 소멸될 위기에 빠진 심각한 수준이다.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들이 가슴 아프다. 언행 불일치(14.2%), 부의 축적(13.9%) 모범이 되지 않는 삶(13.3%) 도덕적 윤리적 문제(12.7%) 교회 세습(8.3%) 등인데, 모두 도덕성과 관련이 있는 항목이다. 이를 분석한 이원규 교수는 “한국의 교인들과 성직자들이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인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다. 가장 높은 윤리적, 도덕적 생활을 신앙생활의 가치로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런데 신뢰 받지 못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믿음이 거부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원인이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데 있다는 것이니, 기독교의 가르침이 근본에서부터 부정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결국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말과 생활이 다르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 하나님이 없는 듯 살아간다. 회개(悔改)를 고백했는데 변한 것은 없다. 사랑은 입술만이고 이기로만 채워져 있다. 이러니 말뿐인 기독교인이요, 예수쟁이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이다.

떠오르는 우화(寓話)가 있다. 이솝의 양치기소년의 거짓말 우화이다. “늑대다”라고 종을 쳐 마을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을 재미있게 여긴 양치기소년이 반복하여 종을 쳐 마을사람들을 속였는데, 진짜 늑대가 왔을 때 종을 쳤으나 아무도 달려오지 않아 양을 잃었다는 우화이다. 반복된 거짓말이 소년을 믿지 못하게 한 것이다. 뒷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하여 대책을 만들자고 했다. 양치기소년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또 다른 의견은 소년이 심심해서 거짓말 한 것이니, 목장에 위락시설을 두어 심심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온갖 첨단 오락시설을 설치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는 양들을 돌보아야 할 본분을 잊고 놀이에 빠진 양치기로 인해 양들이 목장을 빠져나갔다.

신뢰를 잃은 한국 교회라는 목장에 양들이 없어지고 있다. 세속적 가치관에 매몰된 성직자들이 거룩과 청빈(淸貧)을 멀리 하는 동안, 한국 교회는 계속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미 떨어지고 있는데 가속도가 붙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도미노 현상이나, 나비효과의 징조가 ‘신뢰상실’로 표현된 것이다.

영국성공회 전 캔터베리 대주교 캐리 경은 “영국교회가 다음 세대에는 소멸할 것이다. 이유는 청년을 인도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의 교회를 보는 젊은이들은 어떤 반응일까?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한 마디로 돌아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에서 봉사하며 자리 지키던 젊은이들도 떠난다. 염치(廉恥)없는 한국 교회에 실망하고 소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윤실의 통계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콩 심었으니, 콩이 난 것이다. 길이 없을까? 오직 뼈를 깎는 진실된 회개(悔改)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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