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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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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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1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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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 (백석신학교 학장)

남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표방하여 행하는 것을 ‘흉내’라고 하고 옛것과는 전혀 다르게 된 상태를 ‘변화’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아담이 하던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다. 그래서 자기잘못을 자기가 책임지지 않고 상대에게 전가시킨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아내가 먹으라 하여 먹었다고 책임을 전가시켰다. 하와는 뱀이 먹으라 하여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뱀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 자기의 잘못은 없고 모두 상대가 잘못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부모를 죽인 패륜아도 부모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고, 범죄한 자도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며, 북한은 모든 잘못이 남한에 있다고 하며, 일본은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고 하며 책임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켰다. 여당은 야당에게, 야당은 여당에게 모든 나라의 잘못을 전가시킨다. 그리고 사소하게 잘못된 것은 대통령의 잘못으로 책임을 전가시킨다.

한때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아 행하는 백성이 많은 나라가 선진국 백성이요, 세계를 리드해 갈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국가를 정복하려했던 RO의 조직원들도 재판이 잘못됐다며 책임을 국가와 재판장에게 전가시켰다.

책임의 회피는 상대를 억울하게 만들고, 책임을 지는 것은 상대를 자유케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책임을 회피하시며 인간에게 죄 짐을 지운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의 죄와 잘못을 내가 담당하였다 하시며 책임지는 심정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책임은 상대방에게 무관심해서도 안 되며 관계를 단절시켜서도 안 된다. 곧 바른 응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영어로 책임은 ‘Responsibility’이다. 곧 Response(응답)와 ability(능력)의 합성어가 책임이다.

상대방에게 바르게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책임을 지는 것이다.

교단의 분열, 교회의 싸움과 갈등, 가정의 불화 모두 책임을 질 사람이 없다. 잘못의 책임을 안지고 상대에게 지우던 아담과 하와의 삶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제2의 아담이시요, 마지막 아담 되시는 그리스도와 같이 오히려 상대의 잘못까지 책임질 줄 아는 새로운 삶의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하였다.

흉내 내는 삶은 재범같이 잘못을 반복하는 삶이요, 변화의 삶은 본질이 새롭게 되는 삶이다. 옛사람들을 흉내 내지 말고 새사람을 입어 변화를 만들어 가는 전위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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