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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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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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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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하라, 기도하라, 사고하라, 그리고 일하라 - 로크마커의 개혁주의 미학 (20)

▲ 안용준 목사
가뭄에 단비와 같은 일이 지난 50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미술이란 분야가 구체화되고 인식되고 인정되며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가 1966년 창립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의 터널을 통과하였고, 해마다 정기전, 국제교류전, 불우이웃돕기 자선전 등을 통해 소망의 이미지를 전파해 왔다. 또한 미술인 선교회가 사랑의 교회, 지구촌교회, 임마누엘교회, 명성교회, 원천교회, 아트미션 등을 중심으로 설립되어 새로운 예술 시대를 바라보는 비전을 품고 있다. 이제 기독교미술은 교회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고 소수의 별난 예술가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이제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미술을 창조세계와 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예술이라고 이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소통하며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로크마커는 성경의 원리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의 자유 안에서 갈 길을 잃은 현대인들과 심지어 기독교를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이다. 크리스천 예술가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예술가는 사회 안에서 활동함으로써 삶을 영위할 만한 가치 있는 것으로, 영적인 의미에서 풍요로움 뿐 아니라 심오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만드는” 자신의 몫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예술가는 이 시대의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로크마커는 교회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의 개혁이 예술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크리스천 예술가들의 활동은 이 시대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도록 할 수 있는 귀한 도구이다. 그는 이러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전도용 소책자나 기독교 서적들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가르친다.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교회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생활의 실체를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진영에서 출판되는 삶의 각 영역에 대한 좋은 서적들의 출판은 물론,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예술 어휘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술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에게 참다운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전령으로 활동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로크마커는 복음전도만을 위한 도구로 예술이 사용하는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예술은 기독교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될 수 없고, 그 자체로 기독교를 증거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술을 인위적으로 전도의 수단으로만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헨델의 ‘메시아’, 바하의 ‘마태 수난곡’, 렘브란트의 ‘부인한 베드로’, 그리고 시토 수도회의 건물들 등은 복음전파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작된 것들이다. 이 작품들이 심오하고 소중하며 “정당화(Justification)를 필요로 하지 않다”고 언급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목적과 이유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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