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신앙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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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신앙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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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2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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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 새에덴교회 / 시인

한국 교회는 90년대까지 계속해서 부흥한 것처럼 21세기도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와 장밋빛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러나 2014년을 맞는 지금, 그 낙관적 기대와 장밋빛 희망은 오히려 불안과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국 교회가 장기적 침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탈진했고 교회의 신뢰도와 이미지는 완전히 추락했다. 뿐만 아니라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가 함께 공존하던 목회 생태계도 파괴되면서 답보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죽느냐 사느냐, 생존형 목회, 타이거 스타일 목회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체성의 시대로 바뀌었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처럼 삶을 관조하고 즐기며 여유 있게 사는 스칸디 스타일 목회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척 목회자나, 심지어는 신학생들까지도 야수적 소명의식을 잃어버리고 점점 스칸디 스타일로 변해가고 있다.

더구나 한국 교회는 이간계에 빠져 끊임없는 분쟁과 갈등을 겪으며 물고 뜯고 찢어졌다. 그런 모습이 미디어나 언론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비추어 지면서 교회와 목회자들의 신뢰도가 땅바닥까지 추락했다. 그 결과 상당히 많은 젊은이와 지식인층들이 교회를 떠나 가톨릭으로 가고 말았다. 이러한 때에 한국 교회는 큰 패러다임의 전환과 신앙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500여 년 전에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처럼 한국 교회도 새로운 신앙개혁을 일으켜야 한다.

첫째, 주님이 왕이 되시는 교회로 개혁해야 한다.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외쳤던 교회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왕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왕되시는 교회를 세우려고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은 1만 8천 명이나 순교를 하였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어떤가. 말로는 주님이 교회의 머리요, 왕이라고 하지만 서로 기득권 싸움을 하고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가 싸우고 교계 지도자들이 끝없는 정치적 싸움을 하는 것이다.

둘째,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개혁을 해야 한다. 교회가 부흥하고 영적 힘을 발휘하던 시대는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다 내 탓이요, 내가 죽일 놈이요”라는 각성과 통회자복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직 예수만을 전하고 외쳤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죄에 대한 회개가 얼마나 있는가? 얼마나 오직 예수만을 외치고 있는가?

셋째, 성령의 역사를 회복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큰일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될 수가 없다. 교회 개혁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만 된다. 물론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기존의 매뉴얼과 시스템에 의해서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성령의 능력과 동력이 작용해야 한다. 마치 자동차가 갑자기 속력을 내거나 가파른 언덕을 힘 있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터보 엔진을 가동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터보 엔진과 같은 성령의 다이나믹한 능력이 필요하다.

넷째,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송받고 화목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때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왜냐면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눈물을 닦아주며 아픔을 보듬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화목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정쟁이나 교권 싸움을 중단하고 이제는 국민 통합과 소통시대를 열어야 한다. 2014년을 한국 교회 신앙 개혁의 원년으로 삼자. 지난 밤 폐선의 절망과 좌절을 딛고 다시 희망의 돛을 올리자. 다시 첫 새벽길을 떠나는 순례자의 붉은 심장으로 신발끈을 매고 길을 떠나자. 눈부신 아침을 갈망하는 젖은 눈동자, 뜨거운 목젖, 시린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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