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의 문화칼럼] 급해? 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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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문화칼럼] 급해? 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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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1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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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기독교미술 간파하기 (23)
▲ ‘급해? 기도해’, 허진권, 2013.

새해가 밝았다. 옛 것은 가고 새 것이 왔다.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는다. 개개인 마다 새롭게 시작할 일들과 끊어야 할 것들이 있다. 이렇게 시작한 새해도 이제 2주가 지났다. 지금쯤은 지난해까지 계속된 습관의 관성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신정 때는 실패하였으니 설날부터 새로운 각오로 살아보자고 위로를 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이들도 무척 많을 것이다. 건강, 취업, 승진, 사업, 경제, 인간관계 등 개인마다 아주 급한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다짐하는 문제일수록 풀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풀어갈 수 있다고 능력을 과신한다.

필자도 많은 이들처럼 한때는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로 착각했다. 답이 나오면 그 답을 작품으로 옮기려고 말이다. 그리고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자랑도 하려고. 그러다보니 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40여 년을 보냈으나 답은 없었다. 아니, 어리석고 어리석으며 가증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 답이였다.

내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던 일을 가지고 혼자 매달려 걱정하고 이리저리 동동 거리며 사람을 만나고 부탁하고, 해도 해도 되지 않던 일들, 자신만 비천해지던 결과. 그러다 문득 조용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어느덧 응답이 왔다. 그때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급해? 기도해’다.

그 뒤부터 화면에 종종 글씨가 등장했다. 글이라기보다는 그냥 혼자 하는 간증이다. 암송한 것이니 성경의 원문과 조금 다르기도 했다. 그래도 고치지 않았다. 이렇게 한 작품들이 여러 점 모아졌다. 비로소 ‘삶이 곧 예술이다.’에 근접하는 것 같았다.

소개하는 작품의 제목은 ‘급해? 기도해’로 그 동안 주로 발표하던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방법적인 면에서는 좀 다르게 드로잉적인 요소가 강하다. 초기 화면은 여러 가지 색으로 농담을 달리하여 뿌리고 또 뿌렸다. 그 후 화면에 청색의 점으로 십자가를 배치하고 그 밑에도 일열로 점을 찍었다. 그리고 마치 일기장처럼 그 날의 간증을 글로 쓰고 메디움을 바르고 글을 쓰고 또 바르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여기 소개하는 작품에 쓴 글을 적어본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급해? 기도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과 방법은 제각각 다르다. 새벽닭이 울고 난 후, 후회하다 결국 자살하는 가롯 유다와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된 베드로처럼!

이 간증은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 스스로에게 하는 간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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