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르포] 잃은 자 찾아오신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곳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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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르포] 잃은 자 찾아오신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곳에 다시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3.12.1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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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친구들’의 서울역 노숙인 무료 급식

▲ 배식하는 김범곤 목사와 자원봉사자들.
▲ 배식하는 김범곤 목사.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은 12월 중순 어느 날 저녁. 거리는 뚝 떨어진 수은주 탓에 일찍부터 쓸쓸하기까지 하다. 한산한 중림로와 청파로가 만나는 서울역 서부교차로 부근에 사람들이 몰린다. 퇴근길을 서두르는 직장인들과는 사뭇 다른 옷차림새, ‘노숙인’들이다. 이들이 ‘실로암찜질방’이라는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 아래로 가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이들이 찾는 곳은 그 옆의 작은 문. 간판에는 ‘오직 예수’, 그 위로 하얀 십자가가 양팔을 활짝 벌리고 있다. 노숙인들이 그 문으로 들어간다. 올해 초 사단법인화된 ‘좋은친구들’(이사장:김인환, 전 총신대 총장. 전화 02-754-0031)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사랑의 등대’다. 이곳은 노숙인들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소외 계층을 돌볼 뿐만 아니라 긴급 재난이 발생한 곳을 찾아가 식사와 진료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십자가 달고 손해 좀 봤지만
저녁 6시가 막 넘은 시간. 급식이 아직 한 시간 남은 ‘예배당’에선 찬양이 한창이다. 종종 터져나오는 “아멘” 소리가 인도자에게 힘이 된다. 이곳은 항상 육신의 밥을 주기 전에 ‘생명의 양식’을 준다. 예배 후 급식은 이곳 대표인 김범곤 목사의 굽힐 수 없는 원칙이다. 입구에 커다란 십자가를 단 것도 같은 이유다.

▲ 올해 초 사단법인화된 ‘좋은친구들’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사랑의 등대’다. 이곳은 노숙인들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소외 계층을 돌볼 뿐만 아니라, 긴급 재난이 발생한 곳을 찾아가 식사와 진료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밥만 주는 사역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업을 세워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내가 빡세게 설교하거든요. ‘오직 예수’다. 그러니 수백만 원씩 기부해주던 큰 회사들이 그거 보고 종교 헌금 내는 기분이라면서 기부를 안하더라고. 다 끊어졌어. 그렇다고 밥만 주고 그만 두면 안되잖아. 그런데 교회에서 많이 후원해주는 것도 아니거든. 십자가 걸고 사실 우리는 망했지.”

그러나 세상적으로 망한 것이 때로 주 안에서 흥하는 것임을 김 목사는 잘 알고 있다. 그동안 김 목사 혼자서 일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 초에 사단법인화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큰 회사의 기부금 의존에서 벗어나 ‘개미군단’같은 작은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이런 시스템이 더 건강하고 ‘참좋은친구들’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찬양이 울려 퍼지는 뒤편으로 주방이 있다. 주방 위에는 여기서 일하는 상근자들의 숙소가 있다. 열두 명 정도 되는 이들은 슬라브 지붕 아래에서 여름에는 찜통더위와 겨울에는 찬바람과 싸워야 한다. 김 목사의 ‘사택’ 역시 이곳 사무실 곁에 나란히 있다. 김 목사의 침상은 마치 굴 속 같다. 낡은 2층 침대의 2층에는 좁은 공간 탓에 쌓인 짐들로 가득하다. 허름한 벽지 아래 노란 테이프로 얼기설기 이은 장판. 수납장이 없어 침대에 걸린 옷가지들.

김 목사 부부의 두 아들 역시 그 옆방에서 산다. 노숙인들을 섬기는 사역을 한 이래로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김 목사.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두 아들은 잘 자랐다. 책상도 없는 쪽방에서 자랐지만 큰 아들은 총신대를 나와 며칠 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돈이 없어 대학을 못 보냈던 둘째 아들. 고학으로 인터넷 사이버대학을 이수하고 이번에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곳 밥 먹고 재기한 사람 많아
예배당에선 막 설교가 끝났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이 끝나자 이제 육신의 양식이 기다린다. 배식자들이 입은 빨간 앞치마가 식욕을 당긴다. 주방이 온통 하얀 김으로 가득 찬다. 한쪽에선 밥을 푸고, 한쪽에선 모자라는 국을 우주선 같은 국솥에서 퍼온다. 어린 학생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얄팍한 점퍼때기부터, 꽤 괜찮아 보이는 파카까지, 모두들 식판에 수북이 담은 밥을 들고 다시 예배당으로 간다. 성경찬송이 놓여있던 곳에 이제 식판이 놓이고, 뜨거운 국물 한 수저에 차가운 속이 풀린다. 십자가 아래서 밥을 먹는 동안도 스피커에서 찬송은 끊이지 않는다.

이곳 밥을 먹고 새로운 ‘드라마’를 만든 노숙인들도 꽤 있다. 목회자도 7명이나 나왔다. 공사장에서 하반신 마비의 사고를 당하고 이곳에 밥 얻어 먹으러 왔다가 예수를 만나 하반신 마비를 치유 받은 손정호 장로. 그는 사업가로 변신해서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곳 출신 사업가들은 인연을 끊고 산다. 여기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후원마저도 하지 않는다. 이곳과 후원으로 연결되어 아픈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것 자체가 싫은 모양이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섭섭해진다.

▲ 식사 중인 노숙자들.
지난 1992년부터 최초로 무료 급식을 시작한 김범곤 목사. 청량리 쪽 보다 먼저 노숙인 무료 급식을 시작했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기름 유출로 어려움을 겪었던 태안, 지진이 났던 파키스탄, 태풍 피해를 입은 미얀마 등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먹였다.

“사실 처음엔 워낙 힘든 사역을 하니까 좀 자랑하고 싶은 맘도 있었죠. 그래서 명함도 만들었는데 어느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 혼났어. 하나님이 그러시는거야. 넌 ‘오직 예수’라고 하면서 명함 만들어 네 이름 알리는데 열중하냐? 그후론 명함 없이, 군번 없는 용사처럼 일해왔죠.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 명함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불편하지만 고집스럽게 명함 없이 일해왔죠.”

지난 96년도엔 ‘왕초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KBS에서 그의 사역을 취재해 방송했다. 그때도 하나님께 혼이 났다. “이 놈아, 니가 무슨 왕초냐. 예수님이 왕초지. 넌 꼬봉이야, 마당쇠야.” 그 이후로 무명의 마당쇠를 자처한 김 목사는 방송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한편 이런 생각도 있었다. “거지 사역을 한다고 여기 저기 거지새끼처럼 동냥하러 안갑니다. 종놈은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이건 그만의 ‘자긍심’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은 좀 달라졌다. 사단법인화된 그의 사역은 이제 더 많은 후원자들이 필요하다.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최근 써낸 ‘생명의 떡 오직 예수’가 3쇄를 찍은 것에 대해 그는 무척 흐뭇해한다. 때론 지금 이렇게 책 쓰고 언론에 알려지는 것이 ‘타락’한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기도 하다. 종종 처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어둔 과거도 선하게 쓰이다
김 목사가 노숙인 무료 급식을 시작한 건 어쩌면 운명적인 그의 소명이었다. 그도 역시 한때는 알콜중독자였다. 술 마셨다 하면 소주 7-8병 뚝딱, 해장술로 소주 3병이 기본. 게다가 주먹질까지 하며 사고를 만들며 살다 보니 결국 그의 부모님은 50대 초반에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술 귀신이 들린 거지, 그때는 그랬어. 내가 하도 그렇게 사니까 집사람이 늘 교회에서 울고 기도했지. 어느 날은 교회 사람들이 심방을 왔더라고. 부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한 7, 8명이 온 것 같아. 혼자 오면 내 한테 얻어터질까봐 그런 거지. 오면 그냥 안오고 쌀도 가져오고, 내심 고마웠지. 그런데 어느 날 그러더라고. 김 선생님 부흥회 한번 와보시라고. 그때 교회 나가서 예수님을 만난 거야. 사람 됐지.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알콜중독에 폐결핵까지, 나중엔 죽을 날을 기다리던 폐인이었던 그는 “성령의 역사로 술을 끊고 폐결핵도 단번에 치유 받는” 기적을 경험한다. 그 후로 노방전도자가 되었고 시골 교회를 지어주고 낡은 교회 간판을 달아주는 삶을 살다가 노숙인을 돌보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 한때 어두웠던 그의 삶은 노숙인 사역을 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만큼 어둡게 살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죠. 그럼 없어요. 그러면서 노숙인들과 통하는 거죠. 별별 사람이 많지만 다 품고 용서하는 건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IMF 같은 때에는 몇 천 명 되는 노숙인들도 말 몇마디로 통제할 수 있었던 거죠. 하나님께서 저같은 사람도 그렇게 쓰시는 것을 보면 참 기막히죠.”

오늘처럼 추운 날에도 노숙인들이 따뜻한 이곳에서, 그것도 생명의 양식까지 덤으로 먹을 수 있는 현재의 건물이, 사실은 기도 제목이다. 어느 장로님의 후원으로 이 건물을 얻었는데 다시 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게다가 지난 7월부터 두 배로 오른 월세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크게 염려하지는 않는다.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예수’만 붙잡고 노숙인들에게 밥과 복음을 전해왔던 지난 30여 년 세월, 그리고 지금까지 이곳의 밥을 먹어왔던 23만4천 명이 그 증거다. 걱정 보다는 오히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밥만 주는 사역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업을 세워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그림이다. 그 그림을 함께 채워갈 동지들을 찾고 있다.

어느 덧 깊어가는 밤. 밥 한끼의 행복에 노숙인들의 얼굴에서 윤이 난다. 돌아가는 길에 교회 한 켠에 마련된 ‘약방’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의료봉사자들의 자상한 상담에 벌써 아픈 곳이 나은 듯 하다. 늘 많이 찾는 약은 혈압약인데, 요즘 잘 나가는 약은 피부약과 감기약이란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지만, 여기선 주방에서, 예배당에서, 마당에서, 어디서나 ‘낮고 천한 곳’을 찾아오신 아기 예수의 사랑을 보고 만질 수 있다.

문을 나서자 바람이 차다. 잔반을 처리하는 봉사자의 손길이 뜨겁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나누며 교회를 나서는 노숙인들. 십자가 아래 ‘오직 예수’를 지나 다시 거리로 나간다. 기온은 더 떨어졌는데, 웬일인지 춥지 않다. 배가 불러서일까. 굶주린 배 뿐만이 아니리라. 허기진 마음까지 두둑히 채웠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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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곤 목사가 쓴 ‘생명의 떡 오직 예수’
이 책은 오랫동안 김범곤 목사가 노숙인 무료 급식 현장에서 실제로 설교한 내용들과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 자신의 삶을 소개한 책이다. 배고픈 노숙인들 앞에 밥을 두고 오래 설교했다가는 대뜸 “뭐, 이시끼 밥은 안주고”, 이런 흉한 말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짧게 설교한 내용을 담았는데, 이게 요즘 트렌드(?)와 맞았는지 책이 잘 나간단다.

김 목사는 모슬렘 중 가장 보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파키스탄 북서부 전방에서 지진이 났을 때 하루 2만명씩 급식을 하면서도 복음을 전했다. 함께 긴급 구호 활동을 하던 한동대 김학철 교수는 그런 김 목사를 보고 “무식하니까 용감합니다. 어떻게 여기서 성경을 펴서 예배 드리고 복음을 전합니까?”라고 놀랬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취사 차량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양담배 회사가 주겠다는 제의에, 술 때문에 망한 이들을 돌보며, 또 금연을 하는 기독교 단체가 어떻게 양담배 회사에서 주는 차를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로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은 이야기, 된장국만 먹다가 뼈다귀국으로 좋아졌지만 이것도 한 달 내내 먹자 불평이 쏟아진 이야기, 주변 가게 앞에 똥 싸놓고 도망간 노숙인 때문에 ‘가짜 목사’라고 욕을 먹으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이 정말 ‘가짜’는 아니었나, 반성하는 이야기 등 김 목사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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