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를 채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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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를 채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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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0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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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하나님의 영적훈련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공식적으로 계명을 주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습관을 익히도록 하셨다. 계명이 공식적으로 주어진 후에 잘못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5:13). 계명이 공식적으로 주어지기 전에 잘못하는 일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이 된다. 시내 산을 향해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되고 준비되어 갔다.

학교는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잘못하는 경우 그 평가가 평생 남을 수 있지만, 학교는 학생이 만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한다. 학교가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학생을 좀 더 좋은 상태로 발전시키려는데 있다. 학교는 실수가 허용되는 곳이다. 때로 피할 수 없는 실수라면 전장에서가 아니라 훈련소에서 해야 한다. 훈련소에서 겪는 실수와 시행착오는 실전에서의 실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는 말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분의 관심은 처벌에 있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의 성장에 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오는데 관심을 두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6일 동안 만나를 주신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보다 만나에만 관심을 둘까 염려하신다. 만나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수단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일곱 번째 날에 만나를 거두는 노동을 금지하심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가 삶의 목표임을 가르쳐주신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위해 주어진 노동과 생산이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일을 바라지 않으신다. 이는 안식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굶주릴 때 그들은 하나님께 먹을 것에 대해 불평했다. 하나님은 만나로써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전념할 수 있는 안식일을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요구는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그쳤다. 우리도 쌀독에 쌀이 떨어질 때 하나님께서 쌀독을 채워달라고 기도한다. 우리의 몸과 정신이 질병에 시달릴 때 우리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한다. 우리에게 일자리가 없을 때 안정된 직장을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의 자녀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이를 통해 우리가 그 이상의 것을 하나님께 구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기도가 그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신다. 또한 그것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째 날에 만나를 주시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노동을 할 수 없도록 하신다. 안식하지 않고 싶어도 안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하나님께서 만드신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안식 대신에 자신의 양식을 위해 들판으로 나가는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자신의 빈손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육신의 만나보다 더 귀한 것들로 그의 손을 채우시기 위해 그에게 먼저 빈 손을 허락하신다. 또한 그가 안식일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그의 일용할 양식도 토요일에 미리 준비하신다. “조금만 더 많이”라는 구호 아래 일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용할 양식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손이 항상 가득 차 있기를 바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곱 번째 날에 우리의 노동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의 빈 손과 빈 가슴을 채우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던”(눅10:39) 마리아처럼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만 고정하고 말씀을 듣는 날을 갖기를 원하신다.

안식일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를 채우는 날이다. 안식일이 여섯 날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섯 날들이 안식일을 위해 있다. 우리의 노동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수단을 목적의 자리에 놓는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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