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90년, “이제는 진실을 밝혀라”
상태바
간토대학살 90년, “이제는 진실을 밝혀라”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9.10 2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토 조선인 학살 90주기 추도 기도회
▲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간토 조선인 학살 희생자를 위한 90주기 추도기도회’를 개최했다.

유언비어, 악성루머는 현대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연예인들은 이런 악성루머로 인해 목숨을 끊는 극단의 상황을 선택하기도 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만큼 악성루머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90년 전 지금의 악성댓글과는 차원이 다른, 악성루머로 인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다. 이 학살로 인해 파악된 사망자의 숫자는 대략 어림잡아도 6,661명. 하지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리고 죽어간 이들의 국가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그다지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런 때, 한국 교회가 나섰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의, 평화, 생명을 이룩하기 위하여.

# 간토 대학살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토(관동)지방. 갑작스런 지진으로 인해 도쿄 일대는 불바다가 됐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라는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저 불신이 싹텄다. 당장 먹을 식량이, 눈을 붙일 장소가 부족한 상황. 일본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각 지역의 경찰서에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 테러, 강도 등을 일으키고 있으니 주의하라.”

이 내용인 일본의 주요 신문들에 사실 확인도 없이 보도됐고, 기사 내용에 살이 붙어 유언비어는 일파만파 퍼져갔다. 그리고 급기야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와 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당시 지진으로 물 공급은 끊겼고 목조건물이 대부분인 일본의 상황에서 소문은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했다. 그리고 그들의 학살은 시작됐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자경단(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조직된 민간단체)을 조직해 검문에 나섰고,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 없이 살해했다. 함께 살아 좋은 이미지를 쌓았던 조선인들은 그 마을의 사람들이 숨겨주기도 했지만, 다른 마을에서 쫓아와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식 복장을 해도 살해당했고, 어려운 일본어 발음을 시켜 하지 못해도 목숨을 잃었다. 일부 조선인들은 학살을 피해 경찰서 유치장으로 피신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서 안까지 들어와 끌어내 학살했다.

▲ 기도회의 참석자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며 헌화하고, 기도했다.

추후 치안당국은 ‘조선인 폭동’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회복의 명분으로 그들의 만행을 내버려두었고, 그들의 움직임이 도를 넘어 공권력을 위협할 정도가 되자 그제야 개입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된 후였다.

일본 정부는 의도적으로 피해자의 수를 줄여서 발표했고, 자경단 일부를 연행해 조사했지만 형식상 조치였다. 대다수가 증거 불충분 등으로 풀려났고, 이 사건으로 인한 사법적 책임 또는 도의적 책임을 진 곳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 대한민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이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 진상을 규명하라
그렇게 90년이 흐른 뒤, 2013년 9월 5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는 ‘간토 조선인 학살 희생자를 위한 90주기 추도기도회’가 열렸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가 주관하고, 간토조선인학살희생자 90주기 추도행사준비위원회가 나서 만든 자리였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 공동대표 이해학 목사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설교를 통해 “제대로 된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9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냥 두지 않으실 것”이라며 “거짓으로 국민을 호도해 집권을 연장하려는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말씀이 전해진 후, 이날 기도회에 참여한 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배당 한 쪽에 마련된 국화 한 송이 집어 들었다. 헌화 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읊조렸다. 그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재일동포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경과보고에 나선 시민연대 상임대표 김종수 목사는 “2007년부터 간토대학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우리가 한 것은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었다”며 “일본 정부의 잘못이 크지만 문제를 알면서도 방관한 대한민국 정부도 잘못이 있다. 진상규명이 속히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그는 잠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추도사에는 임수경 국회의원이 나섰다. 임 의원은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은 세 상속에서 살아남은 자로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며 “가끔은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눈을 감고 싶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 문제는 최근 일본 우경화와 무관화지 않다”며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가장 잔혹한 범죄의 사죄와 조사를 적극 요청하겠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간토 대학살, 이해학 목사는 “이제 조금은 빛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