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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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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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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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 (백석신학교 학장)

오늘날은 속고 속이는 세상이다. 그래서 속임수와 진실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속임수는 후에 드러날수록 부끄러운 일이 되지만 진심은 감추어져 있다 해도 밝혀지며, 더욱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 자신도 진심을 외면한 채 속임수를 쓰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속임수를 잘쓰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국민 행복시대를 여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사사 기드온의 아들 가운데 기드온의 첩이 낳은 아들인 아비멜렉은 이복형제 70명을 죽이고 외갓집이 있는 세겜의 왕이 되었지만, 세겜 사람들이 배반하자 세겜 망대에 있는 남녀 약 1천 명을 불에 태워 죽인 후 데비스까지 가서 진을 쳤다.

데비스의 백성들도 망대에 올라가자 이마저 불사르려고 하였다. 이때 망대에서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로 내던졌다. 아비멜렉은 두개골이 깨졌고 결국 난폭했던 아비멜렉은 데비스의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죽임을 당했다(삿9장). 백성을 속이고 왕이 되었으나 결국 그의 속임수가 드러나고 진실이 없으므로 한 여인의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위에 내려던져 그 두개골을 깨뜨리니 그가 운명하였다. 속인 자는 결국 속아서 망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을 하실 때 속임이 없으시므로 “진실로” 때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하시며 그 말씀이 일점일획도 속임이 없이 진실하심을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주님이 진실하셨고, 그 말씀이 진실하고 그분의 행하신 일이 다 진실하므로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바울도 세상 사람을 진실한 것 같아도 속이는 것이요, 주의 말씀은 모두 속이는 것 같아도 참되다고 하였다(고후6:8).

교회와 사역은 속임수를 써서는 안된다. 아무리 속임수를 쓰면 효과가 있다고 해도 변칙을 쓰면 본질이 변질되나, 원칙을 쓰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눈가림만 하고 속임수를 쓰는 신앙생활이나 목회는 안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진실’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확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실이 없으면 확신을 가질 수도 없다. 거짓과 속임이 없이 믿는 것이다. 그 말이, 그 원리가 진리이기만 하면 영원히 변질되지 않을 것이요, 많은 사람들과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왜 교회성장이 수평이동은 있으나 성장이 없을까? 그것은 주의 심장을 가진 영혼사랑의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 진실보다 더 강한 메시지도 없다.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는 속이는 것 같으나 참 되기만 한 말씀과 진실한 사랑만이 삶과 사역에 나타난다면, 속이는 세상은 참된 세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진실이 속임을 이기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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