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함과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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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함과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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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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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업 목사, 기독교정화운동 대표

달란트 비유에서는 악함이 먼저 나왔지만 일의 전후를 살펴보면 게으름이 먼저다. 한 달란트 종은 주인을 잘 못 이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비유를 율법주의적 공포라고 해석하지만 내 생각으론 주인에 대한 과신 내지는 자기애, 다시 말하면 인본주의적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첫째 그는 주인의 전능성을 과신한다. 헤치지 않아도 모을 수 있고 심지 않아도 추수할 수 있는 분이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문득 슥 4:6을 생각한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했으나 사람들이 모여지지를 않는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삽시간에라도 수십 명 수백 명이라도 모일 수 있다. 그런고로 기도하고 간구하여야 한다. 그래서 넥타이를 매고 하루 종일 졸아 가면서 기도한다. 그러나 굶어 죽게 생겨도 사람들은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모님은 공장에라도 가서 일을 해서 끼니거리라도 얻어 오려고 나간다. 이 정도 되면 거둬 치우는 것이 낫다. 왜 나가서 전도하지 못하는가?

왜 개척 교회뿐이랴!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아까 말한 스가랴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속죄의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종이 되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을 하나님이 대신 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깊이 오해한 종들이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생명의 구원이다. 다시 말하면 전도이다. 전도 없이 신학교나 신학, 연합회나 총회, 선교나 교단들 교회가 생겨날 수 있겠는가? 전도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기독교의 핵심 사항이다. 전도하지 못하는 종들은 다른 아무것이라도 하면 안 된다. 대개 전도와 관계없거나 전도에 무능한 종들이 정치나 사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기독교를 망쳐 놓는다. 이것도 일종의 기독교적 게으름이다. 자기의 할 일을 팽개치고 자기가 원하는 일에 자기를 내세우고 과시하고 큰체하는 병폐들이다.

각 교계 신문들도 이에 합세한다. 교계신문들의 일면 기사는 교계정치 기사로 장식한다. 성경에서 정치(다스리는 일)는 저 뒤쪽 귀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밀어 내어 온통 정치가 중심인 것처럼 자극한다. 완전히 세속적인 사고방식이요 그리스도와는 동 떨어진 처사이다. 교계 신문들이 언제 사람구원 문제를 가지고 일면 톱기사로 내 놓을지…. 이도 역시 게으르고 그 게으름에서 나오는 악함이라고 성경은 역설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모자라서 내 백성이 망한다고 탄식하던 호세아의 탄식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요사이 모든 일에 교수들의 발제나 토론, 분석적 이론으로 결론을 지우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아마도 공부할 때의 교수의 권위가 뇌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일까? 속물들은 말한다. 학자들은 먹물이라고 … 먹은 공부를 많이 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현실에는 캄캄하다는 뜻이다. 학자가 필요할 때도 있으나 교계의 행사나 사업에는 교수가 해서는 안 된다. 권위만 앞세우는 토론회, 강연회, 세미나 등에서는 얻을 것이 없다.

비본질적인 것으로 본질적인 것을 밀어내는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핑계를 대서 엉뚱한 일에 일생을 바친다. 문학에 치우치는 목사가 있고 정치학 박사도 있다. 세속적 정치논리로 교회에서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전도에 대한 두려움, 전도할 수 없다는 공포감은 우리로 하여금 비근본적인 일에 우리를 투자하게끔 유혹하는 원인이 된다. 이겨야 한다. 목숨까지 바쳐서 전도하면 무엇을 못 할 것인가? 안될 것이 무엇인가?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명령 그것을 우리는 절대 부정적 사고로 둔갑시켜 하나님께 마지막 날 빈손을 내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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