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낮은 곳에서 만난 사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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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낮은 곳에서 만난 사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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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7.0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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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은 처음으로 경찰서 내부를 볼 수가 있었다. 그것도 임의동행(범죄혐의자가 자원해서 동행함) 형식으로 이뤄졌다. 그를 인수받은 경찰관이 조사를 시작했다.

“인적사항을 말하시오.”
선린은 그의 성명, 나이, 주소를 말했다.

“여기까지 임의동행한 것이 맞습니까?”
“예.”
“조사에 앞서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필요하다면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압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겠습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저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술인은 남의 돈을 절취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런 일이 없습니다.”

선린을 조사하는 그의 반장 앞에 불려갔다. 반장과 형사가 하는 말을 선린은 들을 수가 있었다.
“저 피의자에 대한 증거는 확실한가?”
“예, 증거는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럼 빨리 자백을 받고 검찰에 영장을 청구하게!”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형사는 선린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그의 의자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물고 연기를 내뿜으면서 선린을 바라보면 말했다.

“나 많이 바쁜 사람이다. 이런 시시한 사건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빨리 자백해라.”
“저는 남의 돈을 훔친 일이 없습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자. 네가 부인한다고 해도 확실한 증거가 너를 꼼짝달싹을 못하게 할거니까. 차라리 자백을 하고 선처를 빌어라.”
“…….”
“이 바지가 진술인의 것이 맞는가?”
“예.”
“어제 오전에 어디에 연탄을 배달하였는가?”
“신당동입니다.”
“신당동 어느 집인가?”
“예, 신당동 제일 높은 집에 갔었습니다.”
“그때 함께 간 사람들은 누구였나?”
“김무식 씨, 박일성 씨, 그리고 저입니다.”
“그 바로 밑에 집은 누가 갔었는가?”
“거기 김무식 씨 아니면 박일성 씨가 갔을 겁니다.”
“진술인의 바지 주머니에서 가사도우미의 월급봉투가 나왔는데 진술인이 절취한 것이 맞나요?”
“저는 그런 봉투를 본 적도 없고, 제 바지에 넣어 둔 사실도 없습니다.”
“그날 진술인이 신당동 제일 높은 집에 연탄을 배달하면서 계단을 올라갈 때 진술인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피해자의 월급봉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닌가?”
“누가 그렇게 증언했습니까?”
“그건 말해줄 수가 없어! 너는 사실대로만 말해.”

같은 연탄공장에 배달부로 일하는 김무식 씨는 항상 배우지 못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는 배우지는 못했지만 과거 초등학교 소사로 일한 것을 늘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에게 대학생인 선린은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런 가시같은 놈을 한 번 혼을 내주고 싶었다. 무식한 머리를 굴릴대로 굴리면서 자기 생각으로는 빈틈이 없는 계획을 세웠다.

“네가 절취한 것을 분실할 때 목격한 사람이 있는데도 부인할거냐?”
“저는 모릅니다.”
“그럼 증거물을 가지고 말하자.”

그는 사무실 벽쪽에 있는 캐비넷의 문을 열고서 영치품을 그의 책상으로 가지고 왔다.
“이거 봐! 이게 네가 절취한 것의 증거물이야! 잘 살펴봐라.”

그는 선린에게 말하면서 영치품을 넣어둔 대봉투에서 영치품을 꺼내어 그의 책상 앞에 내어놓고서 선린에게 말했다.

“네 손으로 검사를 해 봐! 네가 절취한 것이니까.”

선린의 머릿속에는 번갯불이 번쩍하고 빛나는 것 같았다. 그가 연행되기 전 김진선 씨가 그에게 말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증거물에는 절대로 네 손을 대면 안 돼! 네 지문이 묻을 수가 있어.”
경찰관이 다그쳐 그에게 말했다.
“빨리 검사해 봐라.”
“검사는 선생님이 하세요.”

그때 사무실 출입구에서 신사복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를 맞이한 경찰관이 공손히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김진선 씨였다. 그가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배달할 때는 항상 색이 든 안경을 착용하고 다녔다. 그에게 물으면 그는 대답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고 묻지 말게!”

그가 선린을 조사하는 경찰관 앞으로 걸어오자 경찰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고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좀 볼 일이 있어서 왔네! ”
선린은 김진선 씨가 경찰서를 찾아올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선린을 조사하는 경찰관에게 말했다.

“자네 나하고 잠깐 이야기 할 것이 있네.”
“예! 그렇게 하시지요.”

김진선 씨는 선린을 조사하던 경찰관과 같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김진선 씨는 과거 경찰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선린을 조사하던 경찰관은 경찰학교에서 그를 가르치던 분을 수년 만에 만났다. 경찰서 구내매점에서 차 한 잔을 하면서 서로 말했다.

“교수님, 어떻게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아 오셨습니까?”
“누추한 곳이라니? 정의가 지켜저야 할 현장에서!”
“무슨 용무라도 있으십니까?”
“선린이 내가 데리고 일하는 대학생일세.”
“아, 그렇습니까? 제가 도울 일이라도 있습니까?”
“학생 사건을 옳바르게 처리해 주기를 바라네.”
“무슨 말씀을?”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상한 점이 없었는가?”
“피의자가 완강히 부인하고 또 증거물에 피의자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는가?”
“피의자가 완전범죄를 만들려고 한 것 같아서 증거물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증거물에 지문이 묻도록 말인가?”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선린을 미워한 사람이 무고를 한 것 같네! 자네는 그 함정에 말려들어서는 안돼네.”
“알겠습니다.”
“증거채택의 방법은 반드시 객관적이어야 하네. 이러 사소한 사건에 실수를 하면 앞으로 큰 사건을 어찌 처리할 수가 있겠는가?”

선린을 조사하던 경찰관이 그의 자리도 돌아와서 선린을 보며 말했다.

“자네 훌륭하신 보호자를 두었구먼! 이제 가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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