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우주과학을 꿈꾸다
예술이 우주과학을 만날 수 있을까? 이 두 거목이 조우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놀랍게도 이러한 질문은 고대 그리스시대에 있었다.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가 그린 이 한 장의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이 우리의 궁금증을 말끔히 씻어 낸다.
이제 <아테네 학당>으로 들어가 보자. 세계 최초의 대학인 그곳엔 왼쪽 아래에서 수를 연구하고 있는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인물들이 있다.
다름 아닌 가운데서 유유히 거니는 백발이 성성한 철학자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다. 여기서 왼편의 플라톤이 가지고 있는 책을 잘 살펴보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플라톤의 손에는 '플라톤의 우주론'이라고 할만한 <티마이오스>가 들려있다. 예술적 사고에서 시작하여 우주과학적 사고로 발전한 그의 사유의 폭을 짐작케 하는 책이다. 그는 신화가 당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에 용기를 가지고 반기를 든 것이다. 그는 여기서 매우 과학적인 세계관에 근거한 우주생성론적 요소를 통해 우주론을 펼치고 있다. 이때 천체 운동 이론뿐만 아니라 물질 구조 이론이 연구되었다. 그는 과학적으로 확증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밝혀야 하는지 고심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플라톤의 우주과학 이야기는 21세기를 경험하는 우리의 시각에선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객관적 자연 관찰에 근거한 진질성에 기초한다. 사실 그는 과학이론의 선구자로 등극하기 전에 이미 예술이론의 원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예술이론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을 향한 끊임없는 여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세상의 구체적인 사물들에 아름다움이 있지만,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이상으로 삼았기에 그렇다.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일은 문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더욱이 지금은 협동과 융합의 시대다. 카이퍼도 맹신의 벽을 넘어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 자리를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리하여 원자론적 착상에서 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올라가 인격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예술과 과학을 동일하게 사용하신다. 그 안에서 발견되는 역사적 신학적 근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 분야의 원천이시기에 인류 문명의 독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