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호칼럼] 전도 필살기, 스토킹 전도법
상태바
[옥성호칼럼] 전도 필살기, 스토킹 전도법
  • 옥성호
  • 승인 2012.10.31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옥성호의 기독교 문화를 깨운다 (10)

예전에 한 설교를 들었다.

“우리 동네에 불교를 수십 년 믿은 한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할머니가 교회를 온 거예요. 너무 놀라서 누가 전도를 했나 알아봤더니 다름 아니라 그 할머니의 손녀더군요. 할머니 말이 손녀가 집에만 들어오면 운다는 거예요. 나는 천국 가는데 할머니는 예수님 안 믿어서 지옥 가니까 어떻게 하냐고…. 그렇게 한탄하면서 매일 울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가 마침내 교회 오신 거 아닙니까? 제가 이걸 보고 뭘 배웠는지 아십니까? 아! 그냥 울기만 해도 전도가 되는구나.”

내 기억에 이와 똑같은 예화를 그 전에 최소한 두 번 정도는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를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하셨으니 결코 없는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 의외로 이런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만약에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또 어떨까?

그 할머니의 다른 손녀 또는 손자가 이번에는 할머니 교회 다니니까 극락 못 가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냐고 매일 집에서 울고 있으면? 아니, 울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애는 아예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우면?
내가 이 설교를 언급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도대체 목회자에게 ‘전도’란 무엇인가 하는 점 때문이다. 만약 이 목사님이 ‘전도’라고 하지 않고 그냥 “손녀 때문에 한 할머니가 교회를 오시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내가 설교에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도는 다르지 않은가? 전도는 ‘회심’을 의미하지 않는가? 굳이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선의로 해석하자면 “손녀 때문에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한 할머니가 교회를 다니는 중에 예수님을 알게 되고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는 메시지를 말 하려다 그냥 모든 과정을 뭉뚱그려 ‘전도’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많은 목회자들의 관심이 ‘교회 등록’이지 그 사람의 회심 여부는 아닌 경우가 참 많다. 등록한 사람이 그냥 열심히 다니면 그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신실한 신자’로 간주되고 ‘일꾼’이 되어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게 된다. 일단 교회 열심히 다니면 그 사람의 ‘신앙’에 대해서는 아무도 진지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기독교의 경박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역 중 하나가 전도와 관련해서다. 각종 다양한 ‘전도법’이 유행하고 그 전도법을 배우려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수많은 전도법 중에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들어보았을 ‘진돗개 전도법’은 어떤가? 신문에 실린 진돗개 전도법의 광고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진돗개가 사람을 물고 있는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진돗개 전도법은 한마디로 ‘물고 늘어진다,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결코 놓지 않는다’라는 것 아닌가? 만약 사람 사이에 ‘진돗개 교제법’ 또는 ‘진돗개 연애법’이 나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달리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스토킹이다. 전도에 무슨 ‘법칙’이 있는 양 ‘전도법’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지만 그게 현실이니 참으로 답답하다. 한국에 유행하는 이런 식의 각종 ‘전도법’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보면 할머니 때문에 매일 울었다는 그 소녀의 전도법은 ‘땡깡 전도법’ 또는 ‘눈물 전도법’이 될 수도 있겠다. 그 소녀가 자라 어른이 되어서 그 전도법을 앞세워 간증하고 돌아다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