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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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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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0.2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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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희 목사 (영안교회)

최근 한국 교회 안에서 ‘섬김과 나눔’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을 섬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고, 교회가 해야 할 공적 역할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논의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아름다운재단이 한국 개인기부지수 조사를 발표한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지난해 개신교의 기부참여율은 61%로 2009년에 비해 10%나 하락했고, 자원봉사 참여율도 37%에서 34%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천주교의 봉사가 늘어난 것과 대조되면서 교회의 체면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다.

일반인의 기부 참여율은 45%에서 54%로 늘었다고 하고 자원봉사 참여도 높아지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반인들에게 크게 각인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쥬’가 기독교인들에게서는 왜 줄어들고 있는지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이다.

이러다가는 기독교인의 봉사 비율이 일반인에 크게 못 미칠 날이 올 것이라는 점에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교회가 계속해서 ‘섬김과 나눔’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번 태풍 상황만 돌아봐도 다르지 않다. 볼라벤과 덴빈이 잇달아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과수농가와 일반 주택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예전 같았으면 수해복구를 위해 팔 걷고 나설 기독교인들이지만 누가 먼저 피해 현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교회가 봉사에 참여하긴 했지만 여름 수련회 기간, 교회들은 피해복구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교회가 내적인 사역에 치중한 나머지 외적 책임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교단별로 긴급구조단을 만들고 사회봉사부를 설치하는 등 소란을 떨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죽어가는 바다를 살리는 일에 교회가 전적인 책임을 감당했고, 연이어 터진 해외 재난에도 교회가 앞장섰다. 이웃의 아픔을 보면 먼저 달려 나가는 것이 교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수련회다, 명절이다, 교회 프로그램이다 이런 내적인 사역을 챙기느라 교회 밖의 일에 소홀하다. 나눔과 섬김을 강조하기 전에 교회가 해야 할 일과 크리스천의 기본적인 사명을 돌아보아야 할 때다.

중국의 학자인 맹자는 우물가에 일부러 어린아이를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보았다. 위태로운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린아이를 구했다. 맹자는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선한 마음을 지녔다’며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불렀다.

어디 ‘측은지심’이 유교만의 덕목이랴. 이미 2000년 전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함께 ‘이웃사랑’의 책임을 우리에게 주셨다.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대해 ‘소금과 빛’으로 압축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지금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짠 맛을 잃고, 불을 밝히지 못하는 모습이다. 섬김과 나눔을 강조하기에 앞서 불쌍한 일 앞에서 착한 행실이 저절로 나오는 ‘측은지심’을 먼저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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