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영원한 멘토, ‘렘브란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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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영원한 멘토, ‘렘브란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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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2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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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아름다운 영성이 숨 쉬다(4)- 안용준 목사(목원대학교 겸임교수)

크리스천의 영원한 멘토, ‘렘브란트의 자화상’

이 자화상은 렘브란트의 생애 마지막 해(1669)에 그려진 것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에는 감동이 있다. 세상에는 절망스러운 일들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량해진 우리의 삶을 비옥하게 만들면서 인간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렘브란트의 말년모습(1669)
우선 그림을 감상해 보자. 눈물을 머금은 잔잔하게 미소 띤 얼굴이다. 억지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포장한 초상화와는 거리가 있다. 화면은 삶의 순수성 안에 머물고 있는 한 인간의 독백을 그려내고 있다. 삶의 혹독한 풍파를 초월한 고귀함 마저 느껴진다. 누군가 렘브란트의 인생문제와 씨름하면서 그에 관한 장편 소설을 쓴다해도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보여주는 인상의 깊이에 쉽게 도달할 수 없을 정도이다.

렘브란트는 어떻게 이러한 표정을 할 수 있었는가? 그는 인생의 쓰라린 고통이 가중되는 경험을 할수록 소망을 잃지 않고 더욱 겸손해져서 자신의 죄를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젊은 시절, 성공의 탄탄대로는 오래가지 못했다.

1642년 그의 아내는 겨우 아홉 달밖에 되지 않은 아들 티투스를 렘브란트에 남겨둔 채 사망했다. 후에 헨드리케라는 여인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있었으나 부채로 인한 재정의 파산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결국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던 그의 저택마저 1660년 경매로 처분되었고 전 재산은 몰수되었다.

이제 그는 빈민촌인 로젠그라흐트(Rozengracht) 근처의 아주 초라한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고객의 발길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그은 더 이상 ‘인기 좋은 작가’는 아니었다. 이렇듯 줄줄이 찾아온 시련은 렘브란트를 실의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도 삶의 고통과 아픔에 힘들어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삶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치욕스런 고통이 찾아오자 그는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가 이 고통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다면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는 렘브란트의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의 어두운 한구석에 내동댕이쳐진 실패자의 이름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 지독스런 가난을 통해 세상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현실 너머의 숭고한 영적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렘브란트를 괴롭힌 피곤한 삶이 그의 얼굴에 상처를 남겼건만 인간의 영혼을 아름답게 장식할 만한 가치 있는 일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를 무진 애썼다.

그는 소망을 품기 정말 어려운 시간을 지내면서도 ‘탕자의 귀향’,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 ‘시므온의 노래’, ‘십자가에서 내리심’ 등 위대한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그가 세상의 무가치한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렘브란트의 이 자화상 역시 자유 안에서 숨 쉬며 일구어낸 그의 인생의 교향곡이다. 인생의 오랜 여정 끝에 도달한 샬롬의 현장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 모습이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 눈을 뜨게 하고 그것을 사모하게 한다. 이 자화상은 인간의 이성이 대답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진리의 확실성에로 인도할 아름다운 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순간적인 죄악과 슬픈 행위로부터 갈등하고 있을 때는 우리의 마음을 다독일 좋은 위로 자가 될 수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화음이자 그의 신앙고백이다. 우리의 눈동자를 그에게로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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