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범이 되는 도덕적이고 일관된 삶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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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범이 되는 도덕적이고 일관된 삶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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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7.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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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직 교수의 십계명에서 찾아낸 그리스도의 삶 - (2)

                                            복음전파의 매체

▲ 백석대 조직신학
그리스도인의 삶을 왜 지금 여기서 다루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절대적 기준이라는 사실을 다원화 사회에서 보여주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각종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글로벌 시대에 특정 도덕이나 이념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 변증은 전통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특정 종교나 문화의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는 상대주의 풍토에서 변증은 실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TV나 인터넷, 신문매체 등을 통해 많은 제품들이 광고된다.

하지만 A라는 제품은 B라는 제품에 비해 성능과 품질이 더 뛰어난다는 광고문안만 보고 그 제품을 사는 시대는 지나갔다. 오늘날 많은 소비자들은 그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해본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소비자 체험 수기나 평가를 읽어보고서 제품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최근 특정 연예인들이 경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그 회사 직원들이 평가를 올려 수사를 받게 된 것도 소비자 평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루는 일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원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접할 때 그 주장의 이론이 얼마나 뛰어나는지를 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그들의 주장대로 살아가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을 이론적으로만 외칠 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귀를 막는다. 전도자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혼잡한 지하철에서 외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변증가였던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된 이유를 그의 대표적 저서 ‘변증서’에서 두 가지로 밝힌다. 그리스도인들이 죽음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 순교현장을 목격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이고 일관된 삶이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상업이 활발했던 당시 로마사회의 상거래에 있어서 신용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로마법이 매우 엄격하면서도 자세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상인들의 상거래를 엄격히 감독하고 로마법을 정확히 적용하는 일을 담당해야 하는 로마 관리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관리들의 감독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탈세와 부정의를 행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법을 준수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갔다. 심지어 상거래 약속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에게 경제적 손실이 생기는 경우에까지 그러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완전한 인간인 로마 황제의 눈길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황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유스티누스가 보기에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증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실천적으로 입증한 사람들이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당시 로마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받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이다.

그들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는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복음을 위해 순교까지 불사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세상의 모범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모순에 빠지는 셈일 것이다.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과제를 담당한다는 자부심에 차 있는 한국 교회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같은 모순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 전파의 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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