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금융은 보수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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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금융은 보수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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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7.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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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덕 목사 (샬롬교회 협동목사ㆍ경영학 박사)

밴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미연준) 이사회 의장의 옷차림은 언제나 비슷하다.

금년 3월 21일 버냉키 의장이 6년 만에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했다. 조지 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강의장에 나타난 버냉키 의장의 패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색 정장에 짙은 넥타이였다. 젊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자리라 밝고 화려한 색상의 양복을 입을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버냉키 의장이 언제나 무거운 색상의 정장을 하는 것은 시장에 신뢰를 주기위해서다. 버냉키 의장의 말을 시장이 믿지 못하면 금융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금융인들의 복장은 대체로 일반인들이 보기에 답답하게 느낄 정도로 무거운 색상이다.

나의 경우도 우리나라의 금융정책을 주관하는 한국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관계로 지금도 밝은 색상의 양복을 쉽게 입지 못한다. 무겁고 어두운 색상의 양복이 아니면 왠지 거북하고 불편하다. 현직에서 물러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크게 변한 게 없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지금도 젊은 학생들의 감각을 의식해 마음먹고 화려한 색상의 넥타이를 메어보지만 아직도 신경이 쓰인다.

내가 과장 시절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서 주최하는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 한국은행 런던사무소에서 내가 입고 가야할 복장에 대해 연락이 왔다. 양복은 검정색이나 짙은 국방색, 와이셔츠는 흰색, 넥타이와 양말도 무거운 색이라야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행 직원들이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복장과 별반 차이가 없어 거부반응은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해외에 나가는데 이렇게까지 제약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런던에 도착해보니 영란은행 직원들이나 세미나 참석자들이나 모두가 비슷한 복장이었다.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인 런던에서는 금융인들의 모임에 튀는 색상의 복장으로 참석하면 금융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고나 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복장은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다.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의 성품과 말과 행동까지도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전통적인 금융인들은 양복의 색상만큼이나 보수적이다. 튀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매사에 논리적이고 꼼꼼하게 따지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앞뒤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납득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금융은 한 번의 실수로 시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에서 자금을 운용하는 사람도 보수적이라야 한다. 기업가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때로는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회라 생각하면 모든 것을 걸로 사업을 추진한다.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고 때가 맞으면 그 사업으로 인해 큰돈을 벌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자금 담당자는 돌다리도 두드려가듯이 조심스럽게 자금을 운용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2008년에 문제가 된 ‘키코(KIKO) 사건’이 좋은 예다. 당시 ‘키고’라는 금융상품 때문에 잘나가던 중소기업들 가운데 망한 기업들이 많았다. 키코는 환율변동에 따라 수익 또는 손실이 발생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키코는 환율이 약정한 범위 내에서 내릴 경우 매입한 기업이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을 피하거나 차익을 얻을 수 있지만, 환율이 약정 범위를 벗어나 올라버리면 매입한 기업이 엄청나게 큰 손실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업의 자금담당자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키코’ 상품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조심했을 것이다.

시장은 언제나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실을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키코’ 상품을 만든 사람은 파생금융상품의 전문가지만, 기업의 경영자나 자금담당자는 비전문가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싸움에서는 전문가가 이기게 마련이다.

개인이 자금을 운용할 때도 보수적이라야 한다. 대박을 노리고 자금을 운용하게 되면 언젠가 쪽박을 찰 수 있다. 노후 생활자금으로 장밋빛 앞날을 그리며 공격적으로 주식에 투자한다던지 고수익을 제시하는 벤처기업이나 다단계 사업에 손을 대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고통스러운 노후생활을 보내게 되어있다. 자금을 운용할 때는 주위의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해도 돌다리를 두드려보며 건너듯이 검토하고 확인해야 한다. 이것을 마음에 두고 지키는 사람만이 형통한 길로 갈 수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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