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회적 자산인가? 부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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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회적 자산인가? 부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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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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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목사 (기독교한국성서하나님의교회 감독)

제대로 된 세상이란, 권력(權力), 금력(金力), 그리고 지력(知力)이 저마다 권위를 지니며 조화를 이루는 사회일 것이다. 권력이 금력까지 넘보지 않고, 금력이 지력을 동원하지 않으며, 지력이 권력을 추종하지 않는 사회일 것이다.

조선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란을 극복하고, 중국과 일본의 정권이 교체되는 국제적 위기 속에서도, 오백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권력과 금력과 지력의 균형을 유지할 능력이 있었던 선비계층이 사회적 자산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사실적으로는 무의미하지만 교훈적으로는 매우 유익할 것이다. 만약 정조의 개혁이 성공했었더라면 동아시아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정조의 개혁정치의 중심에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사회 자산의 자리에 있을 때 교회는 부흥되었고, 교회가 사회적 부채로 전락되었을 때 교회는 쇠퇴했다. 교회가 사회적 자산이 된다는 것이 교회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권력과 금력과 지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빛과 소금이 되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만덕산 기슭에 초당(草堂)을 마련해 11년을 살았다. 외동딸이 시집을 가게 되자 치마폭에 매화와 새를 그려 넣고 눈물로 시 한 수를 선물로 써 보냈다. ‘꽃도 이제 피었으니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 다산은 두 아들에게도 유산을 남겼다.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남긴다.‘며 게으름과 낭비를 경계했다. 다산이 전남 강진에 유배되어 처음 4년을 동문 밖 주막집 단칸방에 머물렀는데, 그 토방에 ‘사의제’(四宜齊)라고 현판을 붙여놓고, 네 가지 원칙을 스스로 정하여 지켰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중후하게 하자.’ 다산이 초당(草堂)에서 쓴 ‘목민심서’는 청백리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관리가 지방에 부임할 때 책 수레만 갖고 갔다가 돌아올 때 토산물을 가득 싣지 않고 책 수레만 갖고 온다면 맑은 바람이 길에 가득하지 않겠느냐.’

목사가 교회에 부임할 때 성경책 한 권만 들고 무릎으로 강단에 올라갔다가 은퇴할 때 낡은 성경책 한권만 들고 기도원 골방으로 돌아온다면, 그리고 장로가 성경책 한 권만 들고 청와대로, 국회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성경책 한 권만 들고 고향의 초당으로 돌아온다면, 교회는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종말론적 부활의 믿음으로 십자가의 은혜 앞에 담대히 서자. 그리고 새로운 사명을 찾아내어 이루어내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상원의원이 되고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되는 성공의 절정인 39세 때 찾아온 희귀한 성인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1932년 제32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취임 1년도 안되어 그의 생일날 비영리 재단 마치 오브 다임스(March of Dimes)를 설립하여 소아마비 예방백신 개발에 착수한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만인 1955년 마침내 소아마비 예방접종에 성공함으로써 오늘날 지구상에서 소아마비를 없애는 꿈을 이루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내고 UN을 창설하였으며, 미국역사상 4번의 대통령이 된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중에도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쫓아낸 일은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그의 이런 인류에 대한 헌신은 십자가의 은총에 대한 그의 믿음의 결실이다.

교회가 역사의 빛이 되고 사회의 소금으로 사명을 다할 때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사회적 자산인가? 부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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