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로목사의 세습 회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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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원로목사의 세습 회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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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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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익 목사 (신촌성결교회)

인간은 후회하는 존재이다. 시간이 지난 후 모든 인간은 만족함의 고백보다는 후회와 회한을 토해내게 되어 있다. 여간 노력하고 자기부정을 뼈저리게 제어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두 후회와 회한으로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모두가 알만한 그 분은 평안북도 의주가 고향이다.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고를 치른 분이다. 그 때는 올곧은 신앙인이었을 것이다. 해방 후 공산군이 점령하자 탄압을 피해 월남하여 서울 충무로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 때도 쾌 큰 교회를 이루었다. 그때 그분은 전설이었다. 권위와 영성과 지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그리고 그 교회는 1984년 오늘의 강남 노른자 땅 역삼동으로 이사했다. 그때 강남 이전은 모험이었다. 아직 그림이그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이전은 그의 미래를 내다보는 빛나는 혜안을 유감없이 세상에 보여준 사례에 속한다. 모두가 될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분은 과감하게 불모지 땅에 넓은 땅을 마련하고 이전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초대형 교회를 완공하고 잘 나가는 교회로 명성을 떨쳤다. ‘충현교회’, 그 이름은 이 나라의 최초 초대형 교회로 처음 이름을 세간에 새겨 놓은 이름이다. 그 교회당의 너비는 당시 대형교회가 없었을 당시에는 축구 장만하게 보이는 강남의 빈들만큼이나 광활하게 눈에 비쳐졌다. 그리고 그 분은 1987년 성공스럽게 은퇴하셨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그때부터 영욕이 시작되었다. 후임으로 그분이 양육하였다는 제자 두 분이 거쳐 갔다. 그 두 분이 거쳐 가는 동안 말도 많았고 사연도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 남보다 아들이 낫겠다는 뜻에서였는지 몰라도 아들 되는 분이 계승했다. 대형교회 세습 1호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이름은 퇴색되기 시작했고 세인의 머리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한물 간 교회, 명성을 잃은 교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신문 지상에 큰 활자로 세인에게 다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아버지인 원로목사님이 아들인 담임목사를 향하여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준 것은 내 인생에 최대 실수였다는 고백과 함께 회개한다는 기자회견문이 실렸다. 또 다시 그 교회는 세간에 회자되고 새삼 또 다른 뉴스거리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세습이 이루어진 대형교회 이름들이 줄 세워져 거명되었다. 이제부터 한동안 얼마나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찧어질 것인가. 모든 잡지 신문 방송이 이 문제를 호사스럽게 다루고 까불 것이 뻔하다.

또 생각되는 것은 얼마나 한스러웠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내 실수야 하고 침묵으로 일관할 수도 있었겠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공개선언을 하고 나서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 깊숙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부자지간이라 해도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이 대형교회 세습 문제는 간단하지만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성공을 일구는 것도 중요하다. 그 성공을 오래 간직하고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살아온 마지막 지점에서 되돌아 볼 때 후회스러움이 없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제발 모든 악조건과 반대와 상식을 무릅쓰고 세습을 이루었다면 그 후 부작용이 없이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제발 이런 고백을 들으면서도 후에 후회할 것이 뻔한 대형교회 세습 기도는 없었으면 한다. 후에 후회하고 뼈저리게 뉘우치게 될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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