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 ‘성직=노동’으로 개념 변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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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과세 ‘성직=노동’으로 개념 변질 우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2.06.0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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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장관 발언으로 되짚어 본 종교인 과세 실현 가능성은?

대부분의 종교 ‘무소유 원칙’ 지켜... 기독교계 급여개념 탈피해야
면세점 이하 종교인에 대한 복지지원과 고용보험 혜택 여부도 과제

올해 들어 계속 종교인 과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이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교인에 대한 소득세 과세를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검토하겠다”고 공표하면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됨을 알렸다. 종교인과 함께 대화의 장을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종교계에서는 ‘과세’가 가능할 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기독교계 안에서는 “세금 납부를 하더라고 교회가 자발적으로 할 문제일 뿐, 외부의 압력으로 하게 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불교계와 가톨릭 역시 마찬가지. 이미 세금을 내고 있는 가톨릭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과세를 다루는 것은 종교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 세금 납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민감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미 종교 고유의 특성을 뒤로 하고, 사회적 의무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종교인 과세주장 왜 자꾸 나오나

기독교계 안에서는 이미 목회자 세금납부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바른교회아카데미를 주축으로 10년 가까이 세금납부운동을 펼치고 있고, 올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교회발전연구원 프로그램으로 목회자 세금납부에 대한 논의를 다시 불러 모았다.

지난 2월 열린 교회발전연구원 5차 발표회에서 감신대 유경동 교수는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헌법 제38조에서 국민의 납세의무를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교인 소득세 부과를 관행적으로 면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목회자의 세금납부는 국민의 납세의무이며, 이를 어기게 되면 공평과세와 조세평등주의를 위반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와 기독교가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종교인 과세에 교회가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서울대 손봉호 명예교수도 “국민의 세금으로 깔아 놓은 도로와 시설들을 사용하면서 목회자면 면세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에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적 주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 성역이 매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 종교별 과세 가능할까?

종교인 세금에 있어서 유독 뭇매를 맞는 종교는 기독교다. 하지만 기독교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금납부 운동을 시작했거니와 일부 대형교회는 1970년대부터 세금을 내오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경우 1970년대부터 소속 성직자와 직원들의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지금도 세금납부는 당연한 의무라는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영락교회도 한경직 목사 당시부터 원천징수를 하고 있다. 목회자도 나라의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시작됐다. 바른교회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는 향상교회 정주채 목사 역시 세금을 내고 있다. 정 목사는 10년 째 세금을 내고 있으며, 교회 역시 부교역자를 포함한 풀타임 사역자는 모두 세금납부를 의무화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는 어떨까. 천주교 주교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천주교는 지난 94년부터 성직자 세금을 내고 있다. 1994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취지에서 성직자 세금납부를 결의했다. 그 이후 서울대교구를 비롯, 전국 16개 교구 소속 성당 신부가 원천징수하고 있다.

주교회의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신부에겐 월급이 없다. 단, 활동비와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약 100만원 안팎의 돈이 지급된다. 물론 직급과 연차에 따라 활동비 액수는 상향된다. 그러나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은 내지 않는다. 성직에 ‘실업’의 개념이 적용될 수 없고, 근로의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형식으로 운영되는 천주교의 경우 성직자가 은퇴를 해도 서울 시민 중간정도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교구가 배려를 다한다. 일단 재직중인 신부도 집과 생활비, 가사도우미, 공납금 등을 모두 교구가 제공한다. 별도의 돈이 들지 않도록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100만원 안팎의 활동비만 추가된다. 지난해 한국 가톨릭 통계에 4621명의 신부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고, 이들 모두 적정 수준의 생활과 은퇴가 보장된다.

천주교와 같이 중앙집권 형태를 띠고 있는 원불교도 성직자들의 생계가 전부 보장된다. 원불교 성직자들은 기본연금 30만원 정도만 매월 지급받는다. 과세를 해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원불교 관계자는 “종단 성직자는 기숙사에서 출발해 은퇴 후 수도원에 머문다. 별도의 생활비나 은퇴비가 필요없다”고 말했다. 미혼과 기혼의 성직자가 모두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별도의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결혼과 동시에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지게 되어 있다. 성직자인 배우자의 ‘청빈’에 동의해야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불교는 “무소유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3~6년 단위로 인사이동이 되기 때문에 가방 하나 들고 이사를 다닌다”고 말했다.

각 사찰별로 재정을 관리하는 불교는 아예 급여의 개념이 없다. 지난 4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이사회에서 “스님은 과세 대상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님들은 무보시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불전이나 기도금은 과세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단, 사찰이 소유한 부동산이나 수익사업에 대한 세금 납부는 연구할 부분이 남아있다고 불교계는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불교계의 시줏돈 도박파문 등이 일면서 재정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지적이 일고 있다.

# 세금납부에 따른 국가의 책임은?

종교계는 대체로 세금을 내야한다는 원칙적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사회나 정부가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에는 부정적이다. 종교인을 ‘노동자’로 분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불교 정인성 교무는 “국민의 납세의무는 당연하지만 특수 위치에 있는 성직자를 하나의 직업인으로 분류해 과세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 역시 “종교인이 자발적으로 국민의 일원으로써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납세라는 이유로 정부가 종교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곧 성직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 관계자의 입에서 계속해서 “세금납부”를 운운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세금납부를 강제할 경우, 오히려 지원해야할 극빈자 대상이 많아져 국가 재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향상교회의 경우 세금을 납부하면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도 내고 있다. 하지만 고용보험은 내지 않는다. 직업군에 목회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추진한다면 노동부 직업군부터 정비해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종교인 역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만일 성직자가 실직할 경우,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도 따른다. 또 원불교와 같이 30만원 안팎의 사례금을 받는 종교인의 경우 오히려 극빈층으로 지원을 해야 할 상황이다.

기독교계에서 목회자의 80%가 면세점 이하라는 통계를 내놓을 때, 면세점 이하인 80%를 어떻게 사회가 수용하고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한마디로 세금부과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인 세금 문제가 나올 때마다 기독교가 뭇매를 맞는 이유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실제로 최근 개교회 안에서는 목회자에게 나가는 ‘돈’이 사례비의 개념을 넘어 ‘급여’로 정착되고 있다. 1000명의 성도 기준으로 40대의 유학파 목회자가 담임으로 청빙될 경우 얼마를 받는다는 공식이 교회 안에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재정이 5000만원 일 때, 1~2억 원일 때, 목회자의 급여 기준들이 암묵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물론 더 큰 교회들은 더 넉넉한 사례비를 지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목회자의 노동력이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결국 기독교는 적정 급여에 대한 인식이 있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요구도 더 높이 받고 있는 것이다. 다른 종교가 ‘무소유의 원칙’을 내세우지만 교회 안에서는 이 같은 개념이 희박해진 것도 문제다. 결혼을 인정하는 기독교에서 목회자에게 무조건적인 ‘청빈’만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금 납부를 실천하는 한 목회자는 “목회자 사례에 이미 사회적 기준을 적용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점에서 세속화의 비난을 면키 어렵지 않겠냐”며 “세금을 내고 안 내고의 문제를 넘어 교단 차원에서 목회자 사례비와 청빈에 대한 개념과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도 보다 신중한 접근으로 종교간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고, 성직의 권위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협 관계자는 “세금납부 운동은 사실상 재정 투명성 운동”이라며 “이러한 논의를 통해 교회의 재정이 투명하고 건강해져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게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더불어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 건강성 차원에서 자발적인 세금납부운동이 교회 안에서 먼저 일어난다면 교회를 향한 사회적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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