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3분의 1, 가난한 이웃 구제에 사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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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3분의 1, 가난한 이웃 구제에 사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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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3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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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계정 박사 (백석대학원 조직신학 강사)

늘날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경제 정의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보다 가장 긴급하게 다가오는 문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독교는 시대적인 요구에 대해서 깊은 숙과와 통찰에서 비롯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신학적, 원리적인 논의를 넘어서 경제적인 불의를 비판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경제적 현실 문제에 대한 복음적인 대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독교는 경제적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샬롬나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저명한 기독교철학자 월터스토르프의 저서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의 내용을 인용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의 의는 위협당하는 무죄한 자, 억압당하는 가난한 자, 과부, 고아, 나그네의 편에 서서 반드시 공의를 도모할 책임이 있다.’

또한 가난한 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는 누가복음의 중요 구절들을 검토한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편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한 사회에 가난한 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더욱이 한 사회에 가난한 자들이 있을 뿐 아니라 부자들도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런 현실에서, 그분은 당연히 가난한 자들의 편이다.’교회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원칙은 누군가에게는 실족되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부가 죄악은 아니듯이 가난도 죄악은 아니다. 부가 축복인 것처럼 가난도 축복일 수 있다.

가난한 자의 편을 드는 부자가 진정으로 부유한 자일 수 있다. 부자가 성경에서 비난을 받는 것은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해서다. 이제 한국 교회에 가난한 자와의 공동체적 연대를 실천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의 전통인 십일조는 성경의 원리에 따라 바르게 지출돼야 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십일조를 내야 하는 종교적 의무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그 십일조를 어떻게 지출해야 하는가 하는 분배적 의무에 대해 사실상 침묵했다. 잊을만하면 불거져서 사회의 온갖 비난과 조롱을 불러일으키는 중대형 교회 목회자의 재정문제 근원은 여기에 있다. 십일조는 율법과 정신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배돼야 한다. 십일조는 성직자들의 생활을 위해 지출될 수 있다(민 18:28).

십일조의 일부가 성직자의 생활을 위해 지출되는 것은 성경적 원리에 위반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로부터 저항과 비난을 야기할 정도의 높은 사례비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라 ‘목사’이며, 목사에게 요구되는 생활의 모습은 근검과 절약, 청빈이다.

또한 십일조는 ‘회막’ 및 ‘성전’에 관한 일에 지출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배드리는 처소 곧, 예배당을 구약의 성전과 문자적으로 동일시하는 태도다. 이렇게 되면 교회의 본질인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비가시적 교회보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더 중요시해서 건축에 사실상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성전건축지상주의’가 팽배해지게 된다. 성도들의 피와 땀인 십일조의 대부분을 건축비와 건물유지비로 지출하는 것은 성경적 원리에 위배된다.그리고 십일조는 사회적인 약자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일에 지출돼야 한다.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가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 26:12). 한국 교회가 성경의 원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전체 십일조의 3분의 1은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고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둘째로 교회는 공동체의 평균적 균등을 위한 ‘연보’를 제도화해야 한다. 연보는 개인적 자비심을 넘어서 공동체의 비율적 평등을 지향하는 거룩한 의무다. 따라서 연보제도는 한국 교회 안에서의 파멸적인 양극화를 최소화해서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에서 실현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각 교단별로 목회자 최저 생계비를 책정하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는 게을러서 무능력한 자 혹은 경쟁에서 탈락한 패배자들이 아니라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대형마트의 의무적 휴업은 그 실효성 논란을 떠나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가 나서서 사업주에게 강제로 한 달에 며칠 가게 문을 닫으라고 하는 것은 분명 시장의 자율성 원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약자들을 제도적으로 돕는 매우 선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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