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인생, 천국에 소망 두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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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인생, 천국에 소망 두었으면…
  • 승인 2002.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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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31일 낮 12시 용산역 앞 광장. 태풍 ‘루사'로 인해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지만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길게 한 줄로 서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승합차 1대가 나타났고 이들은 그 차량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을 멈춘 곳은 광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처마가 있는 한 건물 옆. 공사가 중단됐는지 건물 1층은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는지 줄은 순식간에 1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2월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용산 노숙자 선교회'(최성원 목사)는 역 광장 앞에서 무료로 점심 배식을 실시해왔다. 이날도 배식을 받기 위해 노숙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 드시고 또 받으러 오세요", “아이 밥 조금만 더 주세요." 배식 시간이면 언제나 있는 아름다운 실랑이. 결국 밥 한 주걱을 더 받고 나서야 흐뭇한 듯 식사할 곳으로 갔다. 이들 중에는 30대에서 70대는 물론 8살 가량의 아이와 10대 소년, 20대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때로는 가족처럼 보이는 무리들도 있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정은혜 사모(55)는 “이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프다"며 “날씨가 좋으면 2백50여 명이 식사를 하는데 오지 않은 사람들은 식사라도 챙겨 먹는지 걱정이다"고.

특별히 이날은 45세 이상의 여성도로 구성된 성덕교회(박정일목사) 에스더여전도회에서 봉사를 와 비는 오지만 배식은 한층 더 신이 났다. 국을 배식했던 구덕례 권사(63)는 “진작 저들을 돕지 못해 부끄럽고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것 같다"며 “저 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반찬 배식을 맡았던 김정희 권사(66) 또한 “좀 더 빨리 봉사하러 왔어야 했다"면서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선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최성원 목사(56)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져 더욱 사정이 어려워졌다. 용산노숙자선교회는 점심 배식뿐만 아니라 방이 3개인 20여 평의 건물에 노숙자들을 위한 공간인 ‘쉼터'를 마련, 숙식을 해결해 주고 있었다. 항상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던 최목사는 지난달 18일 그날도 일을 마무리하고 쉼터에서 잠을 청하려 했다.

시간은 오후 10시 40분. 최목사는 잠을 자기 위해 이부자리를 펴고 있었다. 모두 잠자리에 들었는지 아무도 없는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박모(53)씨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두께 12Cm 가량의 각목이 쥐어져 있었으며 그것으로 최목사의 머리를 3번 내리쳤다.

이 소리를 듣고 옆방에 있던 김모씨가 뛰어 왔으나 그 또한 각목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박모씨는 또 다시 최목사를 때리기 시작했다. 곧 경찰과 119 구조대에서 출동했고 최목사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뇌진탕 및 경추부 염좌로 두개골이 함몰됐다.

또 경찰 조사결과 박모씨는 정신질환 증상이 있는데다 사고 당일에는 약간의 술도 마신걸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목사는 “평소 열심히 생활해 2달 전부터는 직장생활도 해왔습니다. 박씨를 처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라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지난 해에도 돌보던 사람에게 머리를 맞아 잦은 두통을 알아오던 터라 치료비 및 후유증에 대한 가족과 주위 사람의 걱정은 컸다. 그런데 오후 4시 10분. 설거지가 한창인 사택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목사였다.

“지금 병원 원무과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느 남자 분이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며 지금까지의 치료비를 지불했다"고 전해왔다. 병원비가 없어 퇴원도 못하도 있던 터라 가족들의 기쁨은 이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늘 ‘어서 그들을 돌보러 가야 하는데'라고 말했어요. 아직 완쾌를 위해서는 2~3개월 더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빨리 회복돼 노숙자들의 광장으로 함께 가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사모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02-790-1114)

이승국기자(sklee@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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