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르포] 우리 사회의 변방 ‘베들레헴을 찾아서’
상태바
[성탄르포] 우리 사회의 변방 ‘베들레헴을 찾아서’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1.12.22 1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현란한 조명과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성탄 트리와 함께 하는 성탄절이 익숙해져 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가족들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성탄절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성탄절을 웃음이 넘치고 즐거운 날로 만들어 가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의미를 얼마나 되새기고 있을까. 단지 한 해를 보내기 전에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성탄절을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성탄절은 소외된 이웃과 함께할 때 의미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위해 성육신하면서 택한 곳은 예루살렘 남쪽 작은 마을 베들레헴. 그것도 작은 여관의 말구유였다. 예수는 가장 누추하고 가장 연약한 곳을 선택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신다면 어떤 곳을 찾았을까. 이 시대의 가장 연약하고 누추한 곳은 어디인가.

본지는 2011년 성탄절을 맞아 ‘베들레헴을 찾아서’를 기획했다. 한국 사회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성탄의 의미를 들었다. 같은 민족이지만 가난과 굶주림을 이기고 꿈과 희망을 찾아 낯선 땅에 온 탈북민들, 경제적으로 소외된 채 사회의 그늘 속에서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노숙자들, 부모를 따라 낯선 타국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다문화가정 몽골학교 아이들. 이들은 하나같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변방,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땅히 이들을 찾아오셨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성탄절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소외된 이웃 중에도 가장 변방. 한국 사회의 어둡고 후미진 곳을 기꺼이 담당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편집자 주>

“차임벨의 울림 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함께 퍼지길…”
몽골아이들, 낯선 이국땅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다

열린 창문 저편으로 들려오는 차임벨 소리가 예쁘다. 소리를 따라 찾아가보니 열한 명의 몽골 남학생들이 차임벨 연습에 열심이다. 얼마 전 새로 전학 온 친구들은 차임벨을 처음 봤는지 소리가 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여간 신기한 눈빛으로 차임벨 연습에 집중한다.

“크리스마스 학예발표회가 앞으로 일주일 남았어요. 열심히 해서 무대에 멋진 모습으로 서면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때 맛있는 간식을 푸짐하게 사줄 거에요.”

일렬로 늘어선 학생들은 선생의 다짐에 환호하며 더 열심히 악보를 본다. 반장 우구머르(15)는 한국말을 모르는 새 친구들에게 통역하기에 바쁘다. 반장의 통역을 들은 차임벨 새내기들은 싱글벙글 자세를 잡고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이와중에도 지휘에 맞춰 악보 보랴, 차임벨 울리랴 바쁜 반장 우구머르는 자신이 맡은 ‘라’와 ‘시’에 형광펜으로 칠한다.

푸릅수렘(14)은 크리스마스 학예발표회가 기다려진다. 푸릅수렘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들려오는 캐럴 ‘노엘(Noel)’이지만 우리의 마음이 모아져 아름다운 화음으로 완성됐어요. 차임벨 소리가 너무 예쁘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재능이 많은 후슬렘(17)은 칭찬을 받았다. 자꾸 박자를 놓치는 옆 친구에게 차근차근 악보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차례가 오면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차임벨도 열심히 울린다. 떨리지 않느냐는 말에 후슬렘은 “하나도 떨리지 않아요. 매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성탄절마다 연극, 찬양, 워십 등 무대에 선 경험이 많거든요. 이번 발표회 때 부모님도 오시는데 이번엔 차임벨로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릴 거예요. 저 정말 잘하지 않나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아직 예수를 몰라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 채 차임벨을 울리거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한국말을 몰라 교사의 설명에도 시큰둥해 하기도 한다. 한국에 사는 동안 이들이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언제 즘 알게 될까.

몽골학교에서 가장 어린 너밍, 나뭉, 뭉흐사롤(8)은 고사리손으로 연극 동작을 몸짓하는 것과 몰입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연습이 끝나도 개구진 끼를 발산하느라 대사를 읊으며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예수님 사랑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마지막 대사를 크게 외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눈빛이 반짝거린다. 너밍은 크리스마스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다. 너밍은 “집에서는 엄마, 아빠랑 같이 연습해요. 무척이나 떨리지만 크리스마스 학예발표회 때 잘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나뭉은 옆에서 연극을 설명해주기에 바쁘다. “우리가 하는 연극은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해주는 거에요.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우리가 알려줄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세 꼬마는 조잘조잘 연습에 여념이 없다.

재한몽골학교에서 몽골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한 바이사(16)는 학교에서 1시간도 더 떨어진 곳에서 통학한다. 게다가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크리스마스 학예발표회 준비로 평소보다 잠을 통 못 잔다. 그래도 열심이다. 사물놀이패에서 장구를 맡은 바이사는 장구라는 한국 악기가 낯설지만, 리듬이 적힌 악보를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 번 더 맞춰본다. 몽골 춤은 이미 전문가 수준급이라 연습이 따로 필요 없다.

3년 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한국에 이민 온 바이사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다시 몽골로 간다고 한다.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 한국에서 바이사가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낯선 한국, 낯선 문화. 다른 친구들보다 한국말을 꽤 잘하는 바이사지만 그녀는 몽골이 그립다.

바이사는 크리스마스가 예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날인 줄을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바이사에게 몽골의 크리스마스가 어떤지 물어보니 “몽골의 크리스마스는 손님이 방문한 집 안에 설치된 트리에 돈을 걸어 놓고 가는 풍습이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퍼레이드일 뿐이란다.

“한국에 와서 크리스마스가 성탄을 축하하는 것을 알았어요.” 한국의 크리스마스와 다르게 몽골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마다 축제분위기다. 폭죽도 터뜨리며 불꽃축제도 크게 하고 거리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예수가 없는 무의미한 기쁨의 잔치를 하는 크리스마스다.

몽골인 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몽골인 친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한국인 두 남동생이랑 살고 있는 바이사는 내년이면 졸업을 앞두고 있다. “몽골에 빨리 가고 싶어요. 할머니,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요.” 그리고 한국보다 화려한 몽골의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싶단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완득이’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다문화 가정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족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외국가정이거나 엄마, 아빠 중 한 명이 외국인인 경우 이외에도 귀화자와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가족, 귀화자와 귀화자로 이루어진 가족까지도 다문화 가정이다.

하지만 현실과 다르게 그림자 속에 감추어진 다문화 이웃들이 아직 곳곳에 숨어 있다. 이들에 대한 보살핌과 대책을 교회는 어떻게 세워야 할까.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그 어디보다도 누추했던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것처럼 우리는 더 낮아지고 오늘날의 베들레헴을 찾아 품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