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거리의 노숙인에게도 성탄은 ‘희망’
상태바
[성탄특집] 거리의 노숙인에게도 성탄은 ‘희망’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1.12.21 16: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광야교회에 머문지 한달이 다되가는 장동운 할아버지의 이번 크리스마스 소망은 아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는 것이다.
“홈리스가 뭐 별건가 여기서 나가면 홈리스고 안에 있으면 아닌거야. ”

광야교회(임명희 목사)에서 의탁생활을 하고 있는 김성오(80세) 씨가 이번 성탄절에 바라는 소망은 정상적으로 걷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1년에 200여 명밖에 걸리지 않는 희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돼 내장이 상하는 질환에 걸린 것이다. 이 병에는 약이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김 씨의 노구는 지금까지 5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만 8번 거쳤고, 첫 번째에는 수술대에서만 14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그냥 뒀으면 몇일 안에 죽었을 거래.” 말하는 눈빛이 담담하다.

김 씨는 수술과정에서 배꼽 밑으로 피부를 벗겨내고 양다리에서 피부조직을 떼어 배에 이식해야 했다. 그 과정만 수 차례. 이젠 걸어 다닐 기력이 부족해 다리에서 피부 조직을 떼어낼 엄두도 못낸다. 김 씨의 성탄절은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장이다. 목발을 집고 다리에 힘을 주는 김 씨에게 성탄절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크리스마스, 근간에는 종교 단체만의 행사로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까워. 이전에는 시골이든 도회지든 성탄 케롤이 흐르고 온 나라가 들썩이는 축제였는데… 이젠 멈췄어.”

김 씨는 사회적으로 생존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다보니 성탄절마저 삭막해져 가는 것 아닌가하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삭막해진 크리스마스에 기독교는 사람들이 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화합ㆍ사랑ㆍ이해를 회복해야 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교회는 적어도 따뜻해야지. 내가 기독교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와서부터야. 그런데 몰입할 수록 기독교는 물이나 공기와 같은 종교라고 생각되네.”

올 성탄절 가족 중 누가 가장 눈에 밟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돌린다. 가족이 보고 싶지 않으시냐는 말에 눈빛이 창가를 향한다. 침묵. 성탄절 소망으로 끝까지 부인과 자녀 8명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김 씨는 웃으며 작은 음료수 하나를 건네준 뒤 손수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조금 드러냈다.

“몸이 이렇게 된 후, 짐이 될 것 같아 안 찾아가.” 김 씨는 그 심정과 결심을 가족에 대한 성탄절 선물로 생각하며 매년 보내고 있다.

김성오 씨의 단짝인 지태성(83세) 씨는 광야교회에 몸을 의탁한지 벌써 9년째다. 이곳에서 9번째 맞이하는 성탄절. 김 씨는 가정이 있지만 홈리스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부인의 우울증 증세가 너무 심해져 집에서 나온 경우다.

“광명시 반석교회에 다녔어. 마누라는 지금 목동에서 살고 있어. 그런데 내가 들어가면 뭐라 그래. 마누라 우울증이 너무 심하니 내가 나오는 수밖에.”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바빴는데 요즈음은 비교적 한가해졌다는 김 씨는 성탄절을 맞아 그 의미를 예배에서 찾고 싶다고 전했다. 성탄을 맞아 아기예수님에게 전할 말이 있는지 묻는 말에 김 씨는 말했다.

“아기 예수님이 우리 곁에 와 골고다 십자가 언덕에서 돌아가신 것을 봤을 때 한 없이 마음이 슬프네. 구원해주시고 생명까지 주신 것을 볼 때 나는 눈물부터 나.”

겨울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창밖너머에선 나뭇가지들이 세차게 흔들린다.

함께한지 한 달 되는 장동운(77세) 씨는 그동안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넉 달간 지내다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어렸을 때 한강교회를 다녔어. 그 때 성탄절에는 선물도 주고 괜찮았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일절 없어. 그래서 삭막한 것 같아. 그 때는 교회가 정말 기가 막히게 잘했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 지금은 나를 안아주는 곳이 있어 좋다는 장 씨는 서울 홍제동 문화촌에서만 20여 년을 지냈다. 풍파 섞인 삶. 슬하에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첫 째는 뚝섬에 놀러갔다가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삶도 평탄치 못했다. 부인이 돈을 사기 당하는 바람에 가족이 풍비박산난 후 홈리스의 삶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비닐하우스에서의 날품팔이. 소일거리나 막일이 있는 곳은 어디든 마다 않고 찾아다녔다. 그는 떠도는 삶 속에 성탄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 씨는 이번에 맞는 성탄이 약간은 혼란스럽다. 그나마 실낱같은 기대와 설렘이 실망으로 변하지 않게 미리 애써 실망을 지우는 모습이 엿보인다. 장 씨는 성탄절을 맞아 자식에게 전할 선물로 어떤 말이 있을까.

“남은 큰 아들이 눈에 밟힌다. 한 번 만났으면 좋겠어.” “해주고 싶은 말? 그저 네가 정말 잘살아가길 바란다.” 아들에게 성탄 메시지를 전한 노구의 떨리는 주름진 입술 위로 눈물이 흘렀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과거 우리나라에 주막이나 말죽거리가 있었듯 베들레헴은 나그네들의 쉼터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예루살렘 근처의 베들레헴 외에 다른 곳에도 같은 지명의 도시가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본맏으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오늘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은 낮은자의 모습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광야교회 임명희 담임 목사는 노숙인들에게 다가갈 때는 순수한 신앙의 마음으로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다가가야지 자신을 위함이나 목적을 위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노숙인들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은 신앙 밖에 없습니다. 올 성탄절에는 노숙인들의 마음에도 예수님이 임재하셔서 버림받고 잊혀진 이들을 믿음과 소망으로 일이키셔서 이들이 믿음 안에서 새 삶을 얻고 신앙 안에서 참된 길을 찾길 바랍니다.”

오늘날의 또 하나의 베들레헴을 찾는 교인의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때이다.
▲ 김성오 할아버지는 8번의 수술로 몸이 힘들지만 지금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많이 회복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