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초기 신앙고백 ‘신앙과 삶’의 균형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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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초기 신앙고백 ‘신앙과 삶’의 균형 강조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1.11.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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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대 용환규 교수, 복음주의역사신학회 논문발표회서 선교초기 한국장로교회 신앙 조명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회장:임원택 교수, 백석대)가 지난 5일 총신대 사당캠퍼스에서 '제25차 논문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백석대 용환규 교수(가운데)가 선교 초기 한국 교회 전도문서인 '셩교촬리'(1890)를 중심으로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을 집중 조명했다.
전도문서 ‘셩교촬리’, 한국 장로교회 신앙형성에 큰 영향
신론ㆍ인간론ㆍ기독론 등 기독교 교리도 전반적으로 다뤄

교회는 초기부터 신앙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있는 신앙내용을 표명하는 신앙고백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교회의 거룩성과 순수성을 지키며 성경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로교회의 대표적 신앙유산이다.

그렇다면 초창기 한국의 장로교회도 신앙고백을 갖고 있었을까? 1907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채택한 ‘12신조’가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지역 교회인 소래(송천)교회가 세워진 것은 1884년이다. ‘12신조’를 채택하기 23년 전부터 한국 장로교회는 이미 신앙 공동체로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12신조’를 채택하기 전에 공동의 신앙고백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 용환규 교수는 "초기 다른 전도문서들은 구원, 중생, 회개, 인간의 죄 등 전도와 직결되는 내용들만 언급하는데 반해 셩교촬리는 기독교 신앙 내용의 전반을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백석대 용환규 교수는 “신앙은 그리스도인을 만들지만 교회는 공동의 신앙고백으로 세워진다”며 “독노회가 정식으로 신앙고백을 채택하기 이전부터 교회 부흥을 주도해왔던 한국 장로교회가 무엇으로 교회 공동체의 신앙규범을 대신하고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회장:임원택 교수)가 지난 5일 총신대 사당캠퍼스에서 진행한 ‘제25차 논문발표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용환규 교수는 선교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던 전도문서들 중 하나인 ‘셩교촬리’(1890)를 중심으로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 핵심을 조명했다.

용 교수는 “한국 교회 초기 복음 전파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피고, 초기의 전도 대상은 누구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교 초기의 전도문서를 연구해야 한다”며 “초기 전도문서는 전파된 복음의 내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입장에서 신앙 형성에 미친 영향을 살피기 위해 매우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선교 초기에 여러 번역 성경의 간행과 함께 불신자에게 기독교를 소개하는 것과 초신자의 교리 훈련을 목적으로 전도용 문서와 간단한 교리서가 간행되기도 했다.

용 교수는 “교회가 공동의 신앙고백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에 근거한다면 한국 장로교회가 번역 성경과 초기 전도문서를 통해 공동의 신앙고백을 소유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다른 전도문서들과는 달리 개신교 신학의 전반을 담고 있었던 ‘셩교촬리’는 체계적으로 복음을 정리한 장로교 교리서로 처음 출판된 이래 여러 번 재판돼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 기초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셩교촬리’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문서 선교사역의 일환으로 최초로 제작된 전도지로써 1907년까지 감리교와 장로교를 대표하며 수차례에 걸쳐 재판되는 등 한국 교회의 신앙 형성, 특히 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신앙고백인 ‘12신조’가 고백되기 이전에 교회의 공동의 신앙고백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 예수교리모음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셩교촬리'는 대한기독교서회의 전신인 죠션셩교셔회의 첫 간행물로 알려져 있다. 언더우드의 편역으로 출판됐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한국인 역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890년 6월 설립된 대한기독교서회의 전신인 ‘조션셩교셔회’의 첫 간행물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편역으로 출판된 이 문서는 서론과 본론, 결론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으며, 서론에서는 글을 기록하게 된 목적과 대상에 대해 언급한다. 본론은 신론을 시작으로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세례를 포함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종말론, 성경에 관한 설명으로 구성됐다.

용 교수는 “셩교촬리의 가장 큰 특징은 전도문서이면서도 신학 전반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라며 “요즘 전도지는 교회의 홍보지 혹은 목사의 홍보지인데 반해 셩교촬리는 하나님에 대해, 신앙생활 전반에 대해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입문서의 역할을 했다”고 피력했다.

또한 “개혁주의적 성향보다는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인간의 타락과 죄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없어 이 글을 통해 복음을 접한 초신자들이 죄의 영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성령의 사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과,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및 창조사역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은 셩교촬리가 갖고 있는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용 교수는 “셩교촬리의 또 다른 특징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예배의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신을 감동시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오해인데, 이 글은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감사와 찬송, 회개가 이루어지는 통로라는 사실을 적절하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도를 통해 받아 누리는 복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도 물질적인 복이나 현재적인 복보다는 ‘영복’이라는 내세의 소망과 구원의 감격이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예배당이라는 장소 개념은 사용하면서 교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이나 성경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미흡한 것,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인식과 유일한 삶의 기준이라는 점이 제시되지 않은 것들은 아쉬운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다른 전도문서들은 구원, 중생, 회개, 인간의 죄 등 전도와 직결되는 내용들만 언급하는데 반해 셩교촬리는 기독교 신앙 내용의 전반을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용 교수는 “단순히 신앙의 내용만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과정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기독교가 삶으로 가치를 드러내야 하는 종교임을 보여준 것으로써 신앙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역설했다.

반면 신학적 용어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토착신앙의 신관 혹은 신명을 하나님과 교차해 사용한 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와 바른 신학정립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용 교수는 “이것은 선교가 아무리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며, 전도를 통한 교회 성립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문서선교에 임할 때는 바른 용어의 정립과 바른 신학의 확립이 꾸준히 모색되고 검토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김수천 교수(협성대), 김태식 교수(침신대), 조규형 교수(복음신대), 주연종 목사(육군 항공작전사령부 군목) 등도 △니싸의 그레고오리스의 ‘모세의 생애’에 나타난 완전에의 길 △로드니 스타크의 교회, 분파, 이교 이론 이해와 의의: 기독교의 사회적 형태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이해 △1904-5년 웨일즈 부흥 운동이 영국 오순절주의 형성에 미친 영향 △올리버 크롬웰의 신형군과 그 신앙적 성격에 관한 연구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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