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3강) 과연 우리에게는 얼마큼의 기적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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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3강) 과연 우리에게는 얼마큼의 기적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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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9.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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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리새인들의 표적 요구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 말슴 속에 소개된 그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온전한 믿음인 것이다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 이어서, 두 개의 다른 사건이 등장하고 있다(막 8:11-21). 첫째는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표적을 요구한 사건이고(11-13절), 둘째는 바리새인과 헤롯 왕의 악한 영향력에 대한 경고이다(14-21절). 그러나 두 사건의 연결 고리는 “믿음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장면은 바리새인들의 믿음의 결핍을 가리키고, 두 번째 장면은 제자들의 믿음의 부족을 가리킨다. 이런 견지에서, 이 두 사건은 마가복음 4장에 나오는 비유 이야기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거기에서도 첫 번째 장면은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외인(outsiders)의 영적 통찰력의 결핍을 지적하고 있고(막 4:11-12), 두 번째 장면은 주님이 풀어 설명해 주기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영적 통찰력의 결핍을 가리킨다(막 4:13, 34).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주님께 다가왔다. 그들은 이후 다른 문제를 들고 주님께 다시 다가올 것이다(막 10:2, 12:15). 우리말로는 시험이라고 되어 있으나, 본문의 정확한 의미는 테스트로 볼 수 있겠다. 한편 이 단어는 영어로 tempt의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한다(막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며 ….”). 그러나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가 혼합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테스트하기도 하고 또한 시험하기도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표적을 요구하는 것은, 저자 마가의 견지에서 볼 때, 주님을 죄 짓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명기 6장 16절에 따르면, 하나님을 시험에 빠뜨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이 구절은 마 4:7과 눅 4:12에서 주님이 사탄에 대항하여 인용하신 구절이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단지 자신의 대적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늘로부터의 표적을 구하는 것은 죄 짓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분명코 예수님의 기적적인 치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그러한 증거는 의미 없는 일이다. 이런 까닭에 앞에서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축사(逐邪, exorcism)를 악의 세력과 결탁한 것으로 매도하였던 것이다(막 3:22).

그 이유는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사실에 근거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을 시험하면서,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우주적 표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당신을 하나님이 인정하신 대리인으로 인정하겠소.” 요컨대 그들은 믿음은 거절하고 지식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우주적 표적은 마가복음 13장 24-25절에 약속되어 있는데, 그러나 그 때는 믿음을 위하여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 영광스런 승리의 주님은 택한 백성을 모으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막 13:26-27).

여태껏 수많은 기적을 베풀었건만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탄식이었다(막 8:12). 마가는 이를 강조하여 “(주님이)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심판의 경고를 선포하기 전 흥분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주님의 탄식은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의 실패에 대한 분노 섞인 슬픔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적을 요구한 것은 바리새인들이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이 세대”의 대표로 간주하셨다. 성경에서 “세대”란 표현은 종종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혹은 믿음이 부족한 특정한 세대를 가리키는 부정적 의미를 가리키기도 한다(신 1:35; 시 95:10; 막 9:19).

바리새인들의 표적 요구에 대하여 주님은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12절) 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진실로’란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이 단어는 아멘(am?n)을 해석한 것이지만, 의미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신약에서 당대의 유대인들과 달리 예수님만 아멘을 발언의 첫 머리에 사용하셨는데, 이로써 주님은 특별한 강조와 권위를 나타내 보이시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제까지의 주님의 행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여전히 새로운 표적을 요구하며 주님을 시험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의 표적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눈과 귀를 만족시켜줄 또 다른 기적이 아니라, 이미 성경 말씀 속에 소개된 그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온전한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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