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왜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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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왜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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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6.0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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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초동교회>

“교회는 왜 있습니까?” 젊은이가 물었다. 젊은이는 조목조목 한국 교회의 부정적 사건들을 나열하며 물었다.

“교회 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감투싸움에 휩싸이면서 성직자라 할 수 있나요? 그것도 금권선거를 하여 회장이나 감독의 자리를 산다고 하는데, 그 많은 선거비용은 어디에서 조달하는 것인가요? 목사 개인이 돈이 그렇게 많은가요? 만약 교인들의 헌금이 선거비용으로 사용된다면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헌금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생명의 값이 아닙니까! 목사의 명예를 사기 위하여 거룩한 헌금을 사용하는 것은 성도의 헌금을 모독하는 저주받을 죄입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존재해도 되는 겁니까?” 젊은이의 힐난의 소리는 끝이 없었다. 가슴을 치며 아파하는 직언에 부끄러움만 밀려왔다.

“교회가 물질주의에 젖어서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왜 존재하는 겁니까?”
교회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목사들의 밥을 위해서일까? 어떤 목사가 있어 “아니”라고 소리칠 수 있을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배출되는 신학생의 수에 비하여 턱없이 모자라는 교회로 인해, 이제 교회는 생존경쟁의 격전지가 되었다. 조금이라도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가 비었다고 하면, 수십 통씩 우송되는 목사의 이력서와 목회비전에서 비애를 느낄 겨를도 없다. 장로들은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 이력서에 나타난 성적표를 살펴 성공예감의 목사를 CEO로 세워 조정하려고 한다. 성직에 대한 존경이나 섬김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다.

과연 오늘의 한국 교회들을 “교회”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교회”라고 하면, 그 안에 반드시 들어있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 그런데 온통 예수의 삶이나 말씀들이 금칠로 덧입혀져서 마치 금불상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목사들은 교인의 기복을 바라는 비위에 맞추어 축복을 난사한다. 예수는 복 방망이로 변했다. 언제 주님께서 자신을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셨던가?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 자라야 한다. 자라지 못하면 목사가 능력이 모자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나마 운 좋게 차지한 교회인데 쫓겨나지 않으려니 악을 쓰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인들을 들볶아야 한다. 가시적인 성장성적표가 있어야 한다. 결국 선교도 교회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타락하고 만다. 선교지에서 생명을 걸고 쌓아올린 작은 성과물이 선전물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이 교회 이름으로 할 짓인가?

우리는 먼지를 혐오한다. 먼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쓸고 닦는다. 먼지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우리에게 미움 받는 먼지가 식물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먼지가 있어야만 이슬이 맺히기 때문이다. 이슬이 맺혀야 식물은 수분을 공급받아 생명활동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것에는 소중한 존재의미가 있다. 먼지에도 존재의미가 있는데, 그렇다면 교회는 왜 있는 것일까?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미래를 생각해 볼 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교회생활은 불편하기가 끝이 없다. 하나님이 무서워서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강대상에서 확성기로 들려지는 말씀이 자동차에 확성기로 돌려대며 물건을 파는 것과 같은 소음으로 들린다. 영혼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생명의 말씀은 기대할 수 없다. 그냥 십일조 내지 않으면 벌 받는다. 주일성수 않으면 큰일 난다.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어디에서 진리의 말씀을 들으며, 어디에서 정의로운 삶을 만나며, 어디에서 정직과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고뇌한다. 교회를 찾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질문한다. “교회는 왜 있는 거지?” 누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셔요. 예수님, 말씀해 주셔요. 교회는 왜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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