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7강) 무대 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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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27강) 무대 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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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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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성장과 겨자 씨 비유

하나님(예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를 상정함에 있어서, 공관복음은 각기 그 특징을 달리한다. 마태복음은 아버지와 아들, 즉 부자(父子) 관계를 강조하고, 누가복음은 주인과 종, 즉 주종(主從) 관계를 강조하는데 비해, 마가복음은 스승과 제자, 즉 사제(師弟 )관계를 강조한다. 이처럼 마가복음은 선생(교사, didaskalos)이신 주님을 처음부터 강조하지만, 정작 주님의 가르침은 4장이 돼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 4.1-20)를 통하여 마가는 그 청중에게 주님의 메시지에 응답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끝난 후 등장하는 마가복음 4장 21-25절 말씀은, 주님의 가르침이 외인들, 즉 응답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사역과 가르침은, 등불을 결코 말이나 평상 아래 감출 수 없듯이, 어느 한 구석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으므로 그 누구도 회피하거나 변명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빛과 같은 주님의 가르침은 듣는 사람들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사람이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 그에 합당한 이해력을 주신다. 그리하여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해력으로 말미암아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불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추방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막 4:24-25).

이어서 소개되고 있는 두 개의 비유(막 4:26-34)는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비유(막 4:26-29)는 씨앗의 신비로운 성장을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노력이 씨앗의 성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농부가 씨앗을 밭에 뿌리기는 하지만,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이 비유는, 본래 무기로 무장한 혁명을 통해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억지로 이루려는 주님 당대의 정치적 선동자 및 혁명가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나라가 올 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율법학자들(눅 17:20-21)과 철저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억지로 앞당기려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대한 경고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 마침내 완성될 것임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하면서 인내하며 추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비유 또한 성장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조점이 땅에 심겨진 조그만 씨앗과 크게 자란 나무 사이의 대조에 있다.

겨자씨는 팔레스타인에서 작은 것을 가리키는 전형적 예이고,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는 것은 강력한 왕국을 상징하는 구약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겔 17:23; 단 4:12). 그렇다면 이것은 보잘 것 없는 시작과 놀라운 마지막 결과를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비유는, 비록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이미 현재 예수님의 사역과 인격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활동 중에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주님의 사역과 함께 왔고, 또 오고 있는 중이다. 마가의 공동체에게 있어서, 이것은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다. 비록 그들이 힘이 없어 나약하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들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시며, 마침내 그분의 나라는 확고하게 세워지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마가의 공동체는 목하 로마 관헌들로부터, 그리고 그에 공조하는 유대교 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하여 모든 것을 잃고 빼앗기는 박해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그 막강한 세상 권력 앞에서 마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겨자씨처럼 나약하고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겨자씨처럼 보잘 것 없어 의미 없어 보일는지 모르나, 그런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 성장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히 12:12). 김경진 교수<백석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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