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6강) 신앙과 삶의 열매 없음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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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26강) 신앙과 삶의 열매 없음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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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2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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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자의 비유

주님이 활동하셨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파종을 할 때 씨앗을 먼저 뿌리고난 후 밭을 간다고 한다. 따라서 씨앗이 길가, 돌밭, 그리고 가시떨기에 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가 우리에게 특이하게 다가오는 것은 성공한 경우보다 실패한 경우를 더 많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분율(percentage)로 계산하자면, 75%가 실패이고, 25%만이 성공이다. 그 이유를 주님은 마가복음 4장 13절~20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길가에 뿌려진 말씀은 사탄 즉 외부의 원수들에 의해 죽어버리고, 돌밭에 뿌려진 말씀은 환난이나 박해로 인해 역시 죽어버리며, 가시떨기에 뿌려진 말씀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그 중 4분의 1만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져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주님이 이 비유를 애초에 팔레스타인 유대인 청중에게 말하셨을 때에는 주님의 사역과 가르침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반대를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적대감에 동조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던 까닭에 주님의 사역은 그다지 큰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주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아무도 그 곁에 남아있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묘사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마가가 이사야 6장 9~10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당대 사람들의 무지를 지적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합당한 것이다.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막 4:12) 말씀은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오해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배척하고 거절하는 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을 결과적 안목에서 설명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주님의 기적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듣고 보면서도, 친히 체험하면서도, 여전히 불신과 무지가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들을 귀가 열려서 그 말씀을 믿는 자들은 복 받은 자들이고, 그 자체가 곧 선물이요, 하나님의 기적인 것이다.

마가가 이 비유를 그 공동체에 소개할 때에 이제 그것은 고난과 박해의 상황 아래 놓인 마가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이방인 중심의 마가의 공동체는 주후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대 화재의 범인이란 혐의를 받게 되어, 로마 관헌과 이에 공조한 유대교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4장 17절에 언급된 “환난과 박해”는 마가 공동체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누가복음의 병행구절과의 비교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눅 8:13) 마가복음의 환난과 박해를 누가는 ‘시험’이라는 단어로 대치함으로써 마가 공동체와는 다른 사회적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주지하는 대로, 누가의 공동체는 지연된 종말론적 상황 하에서 박해나 환란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십자가 앞에 놓인 ‘날마다’란 단어는 누가복음의 비 종말론적이고 비 박해적 상황에 대한 좋은 증거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가복음의 해설은 마가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 공동체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종류의 시험과 박해로 말미암아 복음의 말씀을 듣고 받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음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박해의 상황으로부터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가하면, 박해의 고통으로 인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는 자들도 생겨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이러한 변절자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마가는 나중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라”(막 10:31)고 기록하였으리라.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의 신앙과 삶에 열매가 없을 때, 우리는 우리의 귀가 막혀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눈이 감겨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김경진 교수<백석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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