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2강) 유다의 몰락은 유효한 현재진행형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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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22강) 유다의 몰락은 유효한 현재진행형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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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2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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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의 배신

신약성경에는 열 두 사도의 선택 장면이 모두 네 번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10:2-4), 마가복음(3:16-19), 누가복음(6:14-16) 그리고 사도행전(1:13)이다. 이 가운데 이들을 사도라 부른 곳은 오직 누가복음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가와 마태는 그 복음서에서 ‘사도’란 단어를 단 한 번씩만 사용하는데 비해, 누가는 다섯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이는 누가가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사도(apostolos)와 제자(mathetes)를 확실하게 구분함으로써 누가복음의 속편으로써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설립 및 운영에 기여한 사도들의 역할을 부각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적어도 누가의 신학적 구도 속에서 사도는 교회의 지도자이고, 제자는 회중(會衆)인 것이다. “제자의 허다한 무리”(눅 6:17), “제자의 온 무리”(눅 19:37), 그리고 70인 제자들의 파송(눅 10:1 이하) 등은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이 제한된 소수가 아닌 군중임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네 번 기록된 사도들의 목록을 들여다보면 그 순서가 서로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세 그룹으로 나눠진다. A 그룹: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B 그룹: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C 그룹: 야고보, 다대오, 시몬, 유다. 이와 같이 나눠진 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사도들의 활동 및 업적에 따라 분류되어 전승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목록의 처음은 항상 베드로이고, 마지막은 가룟 유다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유다가 이미 자살하였기에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유다에 대해서만 부연 설명이 붙어 나타나는데, “예수를 판 자,”(마태, 마가), “예수를 팔게 될 자”(누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주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 가운데 특별히 사도로 택함을 받는 영예를 누렸으나,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음을 초대교회는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가룟 유다에 대한 이러한 후대의 비판적 평가는 본능적인 욕심과 욕망에 이끌리기 쉬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종의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복음서 초반에 사도로 택함 받는 장면에서 처음 한 번 나오고, 그 다음에는 주님을 배신하는 장면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주님의 사역 기간 동안 행한 착한 일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배신하는 일만 자세하게 기록된 것이다. 등장 빈도로 놓고 볼 때, 수제자인 베드로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마태, 누가 6번; 마가 4번; 요한 10번). 잘 한 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좋지만, 나쁜 일로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가룟 유다의 긍정적 부분으로써 우리는 그 이름에서 특별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가룟이란 말은 본래 이스그리욧(Iscariot)의 준말인데 이는 ‘그리욧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욧은 유다 남부 헤브론 밑에 있는 동네이름이다. 열두 명의 사도 중 유일하게 남부 유대지방 출신이 바로 유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다는 예수님 시대에 남부 유다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던 갈릴리 출신의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먼 남쪽에서부터 북쪽 갈릴리까지 올라온 유일한 인물이었다. 초창기 유다는 적어도 이러한 열심히 있었기에, 아마도 주님은 그를 열 두 사도 중 하나로 임명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처음의 열심이 시간이 흐르며 식어지면서, 자신이 따르던 선생 예수가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줄 민족의 지도자 메시야라는 확신이 서지 않게 되자, 급기야는 유대 관헌들에게 은 30을 받고 팔아넘긴 것이다. 이 돈은 출애굽기 21:32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황소가 그 이웃의 종을 받아 죽게 했을 때 그 황소 주인이 벌금으로 물어주어야 할 금액이었다(참고, 슥 11:12; 마 27:9-10). 유다는 이렇게 해서라도 그동안 갈릴리 사람 예수를 따라다녔던 자신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취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주님이 직접 택하신 사도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몰락이다. 주님이 자신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들을 격려하실 때 아울러 그렇게 하지 못할 자들을 위해 남기신 경고의 말씀의 성취이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 a). 남다른 열심으로 주님을 따르며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였으나, 인간적 욕망에 이끌려 타락해 버린 지도자 유다의 몰락은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경고의 메시지로 남아있는 것이다.김경진 교수<백석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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