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 결혼식, ‘성공회 예전’에 따라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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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 결혼식, ‘성공회 예전’에 따라 거행
  • 객원기자=민성식
  • 승인 2011.05.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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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기도서에 들어 있는 ‘1966년판 결혼 예식서’ 사용

캔터베리 대주교 집전, ‘사회와 하나님에 대한 책임’ 강조

[외신 종합] 지난달 2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거행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손자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미들턴양의 결혼식은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예전에 따라 성대히 거행됐으며, 자연스럽게 영국 성공회의 인사들이 예식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성공회 뉴스 서비스(ACNS)가 보도했다.

CNS는 특히, 이번 예식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영국 성공회의 장엄한 의식을 잘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결혼 예식이 있던 날, 영국의 거리는 결혼 직전 ‘캠브리지 공작 부부’라는 작위를 받은 이 행복한 커플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 수일 전부터 캠핑을 해가며 진을 치고 있던 수천명의 군중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ACNS는 당일 런던의 풍경을 전했다.

이날 결혼 식전 예배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주임사제 존 홀 대주교가 맡았으며, 결혼 예식의 주례는 영국 교회의 공식 수장인 로원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맡았다. 또한 이날 예식에 사용된 예전은 성공회 공동 기도서에 나와 있는 1966년판 결혼 예식서였다.

이날 예식에 참여한 하객은 19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객에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웨일즈의 성공회 지도자는 물론, 영국 및 외국의 왕족, 그리고 다른 종교의 지도자와 영국 주재 외교사절, 의회 의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와 팝스타 엘튼 존도 하객으로 예식을 지켜봤다.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의장주교 데이비드 실링워스 주교, 왕실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크나큰 특권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링워스 주교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모든 결혼식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해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단하는 희망과 신뢰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예식의 강론은 영국 왕실의 개인적인 친구요 멘토이자 왕실 교회의 주임 사제인 리차드 샤트레스 주교가 맡았다. 그는 강론을 통해,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오늘은 바로 희망의 날이라는 점에서, 모든 대륙의 사람들이 이 예식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샤트레스 주교는 지난 3월 신부인 미들턴의 견진성사를 집전한 바 있다. 샤트레스 주교는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공간과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원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결혼식 전에 발표한 메시지를 통해 이 커플이 결혼에 접근하는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 커플이 결혼과 관련해서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해 매우 간단하고도 직접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 대상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할 대상은 전체 사회와 하나님이다”라고 강조했다.

캔터베리 대주교의 이같은 발언은, 이 커플이 결혼을 약속하게 된 과정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두 사람은 2001년 세인트 앤드류 대학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 오다가 지난해 케냐 여행 도중 약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직전 배포된 인쇄물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약혼식 이후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관심과 사랑은 감동적이었으며, 그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다”고 밝혔다.
신랑 윌리엄 왕자는 아버지인 찰스 황태자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이다. 영국 국왕은 영국 교회의 법적인 수장이기도 하다.

이번 결혼 예식은 그리스도교 각 교파의 대표는 물론, 타종교의 대표들까지 참석한 ‘에큐메니칼 예식’이었다. 장로교회와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의 대표와, 불교, 유대교, 이슬람, 시크교, 조로아스터교의 대표도 하객으로 참석한 것이다.

결혼 예식의 성가 합창은 웨스트민스터 성당과 왕실 교회, 그리고 성 제임스 궁의 연합 성가대가 맡았으며, 런던 실내악 오케스트라에 트럼펫이 가세한 악단이 반주를 맡았다. 그리고 윌리엄 왕자의 3대조 할아버지인 에드워드 3세를 위해 작곡된  허버트 패리의 유명한 송영 ‘나는 기뻤네’가 연주됐다. 하객들은 예식 동안 ‘위대하신 구세주여 나를 이끄소서’ 등 3곡의 찬송가를 불렀다.

웨스트민스터 성당은 1066년 이래 왕가의 각종 기념행사와 예식이 열린 곳이다. 특히 이 성당은 왕가의 ‘사유재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공회의 주교가 아닌 왕실의 직접적인 관리 아래 예배가 드려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결혼식이 열리던 날, 런던 거리는 하객으로 붐볐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성당 주변에는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인파가 먼 곳까지 늘어서 있었다. 이날 런던 거리로 몰려나온 인파는 약 11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예식이 끝난 뒤 신랑과 신부는 왕실 마차를 타고 의사당 앞길과 화이트홀 거리 등을 거쳐 버킹엄궁까지 2.5㎞ 구간에서 행진을 펼치며 하객들에게 인사했다.

세계 각국의 성공회 성당에서는 같은 날 결혼식을 축하하는 예배와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영국의 BBC와 미국의 CNN 등 세계 주요 방송사들은 결혼식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와우사우에 있는 세인트 존 더 뱁티스트 성공회 성당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성당에 모여 결혼식 장면을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한 한편, 성당을 찾은 주민들에게 뜨거운 차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성당 주임사제 데이비드 클루터민 목사는, 이번 결혼식이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이 영국을 넘어 전 세계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성공회가 아닌 그 누가 결혼식을 축하하는 차를 제공하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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