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연] 한국교회, 종교개혁 당시와 유사하다
상태바
[지상강연] 한국교회, 종교개혁 당시와 유사하다
  • 운영자
  • 승인 2011.04.22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복권·성직매매 중세말 현상… 개혁정신 찾아야

특집 // 개혁에 직면한 한국 교회, 어디로 가야하나

성장과 축복만을 추구하며 달려온 한국 교회가 최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금권선거 폭로로 시작된 교회의 문제들은 목회자 성윤리와 재정 문제, 기복신앙과 성직매매 등 각종 비리와 타락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숨겨졌던 치부까지 드러나며 한국 교회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개혁의 요구 앞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크리스천기자협회(회장:이현주 기자, 본지)가 지난 15일 정기 심포지엄을 열고 ‘개혁에 직면한 한국 교회,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주제로 방향성을 모색했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가톨릭의 시각에서 개신교의 문제를 짚어보고, 종교개혁 당시 부패상과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을 비교 분석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본지에서는 외부자의 시각으로 한국 교회의 문제를 진단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박문수 부원장의 발제와 한국 교회의 현재와 중세교회를 비교한 백석대학교 임원택 교수의 발제를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주>

백석대 임원택 교수
임원택 교수<백석대학교 >

중세 말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성경에 대한 무지와 성경을 경시한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는, 말로는 성경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 말 교회의 강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 대신 현학적 내용과 철학적 사변, 달콤한 이야기로 채워졌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보다는 교훈적 이야기나 기복적 설교가 판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기복신앙의 문제는 헌신과 희생, 사랑과 봉사 같은 기독교 신앙의 열매들을 갉아먹는 정도를 넘어 이제 아예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위협하고 있다. 입으로는 ‘주님’을 부르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맘몬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모양만 신자일 뿐 참 신자는 아니다. 스스로를 ‘주님의 몸인 교회’라고 자처하지만 소외 받고 상처 입은 영혼을 감싸고 품기보다는 교회의 외면적 성장을 위해 ‘양 뺏기’를 마다하기는커녕 ‘믿음’의 이름으로 불법도 자행하는 ‘교회’는 결코 주님의 참된 몸일 수 없다.

중세 교회의 성인숭배와 마리아 숭배 문제는 오늘날 한국 교회 가운데 ‘기도 받으러’ 다니는 일과 유사하다. 특정한 개인이 기도하면 그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그에게 ‘기도 받으러’ 간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화체설과 사제서품 교리를 가르치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도, 스스로는 교회에서 제사장 노릇하려는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다. 목사가 제사장 행사하는 예 중 하나가 목사가 ‘축복권’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축복권’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으로, 한국 교회 일각에서만 사용되는 매우 독특한 말이다. 목사에게 ‘축복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목사를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매개로 만드는 것이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에 했던 역할을 마치 오늘날 목사가 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들 중 하나가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사제라는 매개를 필수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죄 용서를 받는 사죄 과정의 중심에 신자가 사제를 찾아가 죄 고백함을 두고 사제의 사죄 선언으로 사죄 과정을 마무리하도록 규정해 둔 것은 사제를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매개로 여기게 만드는 대표적 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개신교 일각에서 목사를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매체로 여기는 그릇된 행태를 보임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골고다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중보는 없다.

중세 말 성직매매는 고위 성직을 팔고 사는 것과 사제직을 팔고 사는 것, 두 가지였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일부 교단들의 총회장 선거와 관련된 부조리는 고위 성직을 팔고 사던 중세 말의 추태와 많이 닮았다. 음성적인 선거 운동이 너무 심하다 보니 그런 부조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제비뽑기 방식을 도입하는 교단들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개별 총회를 넘어서는 연합단체의 수장직과 관련하여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총회장직이나 연합단체의 수장직 자체는 선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직을 맡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총회장직이나 연합단체의 수장직처럼 교회 전체를 섬기는 직분이 더 이상 명예나 감투로 여겨지지 않고 그 본래의 의미대로 기능직으로, 더 나아가 섬김의 직으로 올바로 인식되는 날이 속히 와야 할 것이다.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 외에 유산 기부 등을 통해 교회 재정을 넉넉히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더 많은 헌금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 명목의 속죄 미사를 만들어내어 시행하고 면죄부를 판매했던 중세 말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나라 개신교회의 단면을 보는 아픔이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들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헌금 봉투는 우리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매우 잘게 갈라놓은 헌금 조목들은 여러 가지 속죄 미사를 만들어내고 면죄부를 판매하던 중세 말 로마 가톨릭 교회를 떠올리게 만든다.

앞서 말한 대로, 중세 말은 물론이고 오늘날 한국 교회 목회자와 신자의 삶과 윤리의 총체적 위기의 시발점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자의(恣意)적으로 해석과 적용 그리고 가르침에 있다. 그러므로 최우선적 대안은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와 자기 개혁이다.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자들과 양떼를 목양하는 목회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스스로를 개혁해야 한다.

신학으로 말하면 개혁신학만큼 좋은 신학도 없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좇아 행하고 성경에 비추어 보아 그릇된 것은 바로잡는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계승한 개혁신학의 핵심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가 몸을 불려놓은 전통에 맞서 신앙과 삶 가운데 성경에 비추어 보아 그릇된 요소들을 제거함으로 성경적 신앙 회복에 주력했다. 한국 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에 따라 살려고 노력해 온 데는 개혁신학의 공헌이 매우 컸다.

개혁신학이 그 생명력을 회복해야만 한다. 신학적 근간인 개혁신학을 따르며,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분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면서, 개혁신학의 본질 회복을 위한 실천적 운동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