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연] 가톨릭에서 본 개신교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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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연] 가톨릭에서 본 개신교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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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4.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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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복음이 아닌 ‘약자의 복음으로’ 변화돼야

특집 // 개혁에 직면한 한국 교회, 어디로 가야하나

성장과 축복만을 추구하며 달려온 한국 교회가 최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금권선거 폭로로 시작된 교회의 문제들은 목회자 성윤리와 재정 문제, 기복신앙과 성직매매 등 각종 비리와 타락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숨겨졌던 치부까지 드러나며 한국 교회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개혁의 요구 앞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크리스천기자협회(회장:이현주 기자, 본지)가 지난 15일 정기 심포지엄을 열고 ‘개혁에 직면한 한국 교회,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주제로 방향성을 모색했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가톨릭의 시각에서 개신교의 문제를 짚어보고, 종교개혁 당시 부패상과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을 비교 분석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본지에서는 외부자의 시각으로 한국 교회의 문제를 진단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박문수 부원장의 발제와 한국 교회의 현재와 중세교회를 비교한 백석대학교 임원택 교수의 발제를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주>

외부자의 눈으로 본 한국 개신교의 현실과 미래 방향

박문수 부원장<가톨릭문화연구원 >

여러 통계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개신교는 요즘 한국 사회 종교가운데 가장 낮은 신뢰도와 위신을 기록하고 있다. 대형교회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각종 스캔들, 재벌 세습에 버금가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목회 세습, 또 이들이 사회적 강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친화관계를 유지하는 모습, 이웃 종교에 대한 폄훼와 공격적인 선교태도, 친미반공노선의 선봉에 서서 평화 대신 불화를 선포하는 모습 등이 이러한 사태의 원인으로 보인다.

실상 개신교에 불명예를 안기고 있는 이들이 소수임에도 여론은 개신교 전체에 대하여 냉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신교가 천주교와 같이 단일한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보니 이런 소수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개신교의 사회적 위신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가톨릭에 있으니 두 교단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몇 가지 측면에서 두 교단의 비교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먼저, 제도와 카리스마의 관계이다. 가톨릭은 제도를 개신교는 카리스마를 대변한다. 지내보니 가톨릭의 교계제도는 참으로 공고하다. 어떤 카리스마도 두 세대를 넘기기 전에 제도화시킨다. 심지어 주교도 이 제도가 무섭다고 느낄 정도이다. 이에 비하면 개신교는 참으로 카리스마적이다. 성령이 제도를 넘어 자유로이 불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교파분열이 다반사고, 개교회주의 경향도 강하다.

두 번째는, 가톨릭은 이웃 종교에 대하여 포괄주의 또는 완성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이웃 종교에 대하여도 매우 관용적이어서 이웃 종교에 대해 무례한 행동이나 발언을 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신앙심 좋은 개신교 목회자와 신도들의 눈에는 혼합주의적이고 종교성이 약한 태도로 비친다. 그렇다고 천주교 신자들이 다원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 신자들도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 생각하고 또 최고가 되고 싶어 한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사회봉사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그렇게 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이 선포의 본질을 약화시키는 것이긴 하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일부 개신교 신자들 덕이다. 상대적으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선교 태도를 갖는 모습이 장점도 있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정작 자신의 땅에서 역풍을 맞는 까닭이 무엇인지 성찰해보면 좋을 것이다.


세 번째로, 가톨릭은 수도생활을 보존하고 있다 보니 공로(功勞) 개념이 강하다. ‘은총만으로(sola Gratia)’를 강조하는 개신교의 눈으로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천주교 개신교 공히 80년대 중반 이후 신자 구성층의 중산층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두 교단 모두 정치적으로 보수화를 경험하였다. 신앙생활에서는 지성적인 욕구가 강해졌다. 천주교는 이 흐름이 성경 공부, 영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개신교에서는 설교 · 예배 시간이 축소되는 대신 의례(천주교에서는 전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흐름이 많은 목회자들을 가톨릭의 영성훈련 프로그램에 불러들인 이유라 생각한다.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이 차이에서 오는 장점을 배우려 노력한다면 개신교가 기존의 강점을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 번째로, 나는 가톨릭에 속해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가장 전망이 밝은 종교가 개신교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만 예로 들어 보더라도 개신교는 전래 당시부터 지금까지 천주교에 비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런데 긍정적인 평가는 천주교가 더 많이 받고 있다.

천주교에 대한 호감이 천주교가 개신교에 앞서 있지 않은 영역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분들과 시대를 앞서 이끌 수 있는 지도자들도 개신교에 더 많다. 대안적인 미래를 추구하는 노력들도 개신교가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런데도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 개교회주의가 갖는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제도화는 곤란하겠지만 교단, 넓게는 개신교 전체의 위신 향상을 위해 개교회주의를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섯 번째로, 개신교, 천주교 공히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되었다는 평가를 듣는 점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교회가 정치집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점이다. 그것도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기득권층을 편드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심각한 반역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두 교단이 점차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다.

특히 외부자의 시각에서 안타까운 것은 다수의 군소교회 목회자들이 큰 교회를 모델로 삼고 자괴감과 열등감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무자비한 시장의 논리를 교회 안에서 답습하고 또 그렇게 해서 성공한 목회자들이 교회 안팎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들 것이다. 그러나 대형 교회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현상이고, 이러한 때는 맘몬이 아니라 가난을 따르는 것(대신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이 방향이다.  

이제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 투명성을 갖출 것을 요청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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