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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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1.03.23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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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지체장애인협회 회장 김창환 장로

▲ 대구광역시지체장애인협회장 김창환 장로
중3때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겨내
사업 경영하며 장애인 위한 다양한 활동 전개하며 ‘희망’ 선사


“장애인은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를 갈망합니다. 그들은 장애가 없는 일반 사람들처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사단법인 대구광역시지체장애인협회(이하 지체장애인협회) 회장 김창환 장로(창성교회, 박재성 목사). 지난 2006년 제6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 사회참여 확대, 권익 및 자립을 도모하는 등 대구시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다.

대구는 현재 모든 장애 유형을 포함해 약 23만 명의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중 김창환 장로가 활동하고 있는 지체장애인협회는 전체 80%의 장애인들을 돕고 있는 대구에서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김창환 장로는 중학교 시절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을 직접 몸소 체험했다.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충북 보은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자동차와 부딪혀 사고를 당했죠. 그때 왼쪽 다리를 잃고 3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던 터라 그의 삶은 절망으로 얼룩져만 갔다. 그러나 매일같이 자신을 위해 눈물을 쏟아가며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정성을 외면할 수 없었을 뿐더러 하나님을 붙드는 신앙의 힘으로 힘든 나날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한 쪽 다리에 의족을 하니 걷기에 너무나도 불편했습니다. 평생을 절룩거리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언제나 저를 바라보시며 기도해주시는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걷는 연습을 시작했죠.”

그 이후부터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또 사회에 진출했을 때도 정상인처럼 보일 수 있도록 피눈물을 쏟아가며 걷기 훈련에 매진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자신이 장애인이란 사실을 말해주기 전까지 주변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게 됐다.

“지난 2002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고관절을 다치기 전까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으면 걷기가 매우 불편하지만요.”

사실 김창환 장로는 대구에서 알아주는 (주)창진물류 회사의 회장이기도 하다. 현재 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은 아들에게 맡겼지만 창진물류는 180대 이상의 탑차를 보유하고, 연매출 200억 정도가 될 정도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물동량으로 봤을 땐 한강 이남에서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는 대규모 물류회사로도 꼽히고 있다.

지난 1971년 고향인 충북 보은을 떠나 대구로 이사 온 그는 친척 어른의 도움으로 대한통운에 입사해 회사생활을 했다. 그리고 5년 후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운송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 때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트럭 5대를 구입해 시작했지만 사고가 나는 바람에 거의 빈털터리가 되다시피 했죠. 사무실도 얻지 못해 친구 사무실 입구에 책상 하나 들여 놓고 회사를 운영할 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회사를 찾아다니며 계약을 해야 하지만 장애인이 생필품 같은 것을 팔려고 접근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정문 앞에서부터 차단을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견뎌냈습니다. 어쩌면 사춘기 시절 독하게 걷는 연습을 해서 정상인처럼 생활하게 만들었던 당시의 의욕과 열정, 그리고 신앙의 힘이 포기하지 않도록 붙들어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장애인으로서 주는 것 없이 무조건적인 도움만 받으려 했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열정이 사회 안에서도 우뚝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육신의 고통은 피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 저에게 물질적인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물론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고초를 겪기도 했죠. 하지만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저의 모습 속에 남아 있는 교만함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현재 김 장로는 물류회사 뿐만 아니라 친환경제품을 만드는 ‘광촉매환경주식회사’,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모든 폐기물을 처리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재생공장’까지 사업을 확장시켰다.

이와 같이 3개 회사를 경영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지만 그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장애인들을 향해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고 해오고 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소년소녀가정을 돕기 시작했죠. 라면 200~300개 박스씩 구입해 구청에 갔다 주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게 했죠. 그러다가 돕는 활동이 점차적으로 넓어지면서 장애인체육회 활동에도 발을 들여놓게 됐고, 지체장애인협회 활동까지 하게 된 것이죠.”

사실 김 장로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장애인체육회도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05년 사단법인으로 정식으로 발족하면서 장애인 베이징체육교류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지난 1995년에 구민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자랑스런 대구시민상을, 2008년에는 나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장애인 고충상담사업, 중증장애인 주거개선사업, 문화교육사업, 장애인보장구정보사업, 편의시설지원센터 및 편의시설시민촉진단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체장애인협회는 지역 내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 사회참여 확대, 권익 및 자립을 도모하며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홈페이지(www.domi.or.kr)를 통해 장애인과 관련된 법령 시책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장애인 및 비장애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민원 상담실을 통해 상담해주고 있다.

박 장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운영 및 편의시설시민촉진단 활동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편의시설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임산부, 아동, 환자, 짐을 든 사람, 유모차를 미는 사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등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해부족으로 편의시설이 잘못 설치되거나 이용을 하지 않는 경우를 고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 장로는 지역 장애인의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인 ‘대구광역시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면서 장애인의 기술 능력을 이끌어내어 취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여름이 되면 피서를 떠날 수 없는 중증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지체장애인하계바다체험대회’도 개최해오고 있다.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이 많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장애인 스스로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래서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장애인 복지의 핵심입니다.”

‘자유로운 세상 우리가 만든다’는 기치를 내걸고 함께하는 세상, 편안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김창환 장로는 “지체장애인협회는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왜곡되고 부정적인 시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단체로 거듭 발전할 것”이라며 “현재 장애인의 권익과 욕구를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만큼 한국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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