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시민은 절제와 검소한 삶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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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시민은 절제와 검소한 삶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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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3.2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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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사순절을 맞이하는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자세

긴 겨울의 혹독한 추위도 봄이 오면 떠나고야 만다. 인간의 고난과 슬픔도 영영 떠나지 않을 겨울 추위와 같지만, 새로운 소망의 햇살이 비춰오면 이것도 시간의 과거로 묻히고 만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고통과 시련이 깊을수록 생명과 부활의 희망도 오고야 만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나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은 승리의 환희가 넘치는 부활의 기쁨은 사순절의 사죄와 통회의 아픔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옷깃을 여미고 나의 모습을 깊이 살펴야 할 중요한 기회라 생각한다.

▲ 안중식 목사<한신대학교 초빙교수>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와 현대 문명이 가져다주는 안일과 즐거움을 은혜와 감사보다는 낭비와 사치로 물결치는 풍조에 밀려가는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가 된다면 축복이 될 것이다. 특히 물질의 번영과 육체적 평안이 기독교가 말하는 축복의 모든 것처럼 생각하는 교회와 교인이 있다면 사순절 기간에 고난의 의미와 십자가의 은총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 이런 뜻에서 사순절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사순절의 뜻을 새기고자 한다.

Ⅰ. 사순절이란?
사순절이란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40일간이며, 그 기간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러한 준비기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부활절을 더 의미 있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제자들의 교훈집에 따르면 사순절이 제정되기 전에도 금요일과 토요일에 금식하는 관례가 있었고, 니케아 공의회(325년)에도 40일 기간의 부활절 전 준비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사순절이 갖는 목적은 전통적인 관례의 내용을 통해서, 기도와 참회, 자선과 자기부정 혹은 절제의 훈련, 좀 더 겸허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아로새기며, 부활주일을 맞으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순절이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것 자체가, 신자들이 참회와 자복으로 지난날의 죄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재의 수요일 행사에서는 전년도에 사용했던 종려나무 가지를 태워 성수에 개어서 목회자가 엄지손가락으로 신자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면서, 십자가를 통한 속죄와 용서의 은혜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이 때 목회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3:19)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2)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태복음 1:15)
3) 참회의 시(시편6, 32, 38, 51, 102, 130,143)를 읽는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작은 카드를 나누어주고, 그 카드에 자신이 사함 받고 싶은 죄목을 적어내면, 제단 위에서 그 모든 카드를 태워 죄 사함의 경험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강조되는 ‘재’는 성서에서 죄와 잘못을 자복하며 슬피 뉘우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구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 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올 것임이라. (예레미야 6:26)
2)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 9:3)
3) 다른 성경(민수기19:9, 19:17, 요나3:6, 마태복음11:21, 누가복음 10:3, 히브리서 9:13)에도 언급되어 있다.

Ⅱ. 왜 40일인가?
교회사 자료에 따르면 처음 로마에서는 부활절 전 주일 지금의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부터 한 주간을 금식하는 것으로 부활절을 준비하였다.

이것이 4세기에는 3주간의 준비기간을, 354-384년 사이에는 6주간의 준비기간을 갖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가톨릭의 사순절 기간은 1969년 이후 8주간으로 정했는데, 그 이유는 비잔틴 교회의 전통에 따라 토요일과 일요일은 금식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40일을 채우기 위해서는 8주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문제는 왜 40일에 집착하였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신구약성서가 전하는 40일간의 준비된 사건들과 관계가 있다. (모세의 40일간의 금식, 출애굽기 34:18 / 엘리야의 40일간의 금식, 열왕기상 19:18 / 이스라엘 백성의 40일간 광야생활, 민수기 14:33 / 예수님의 40일간의 금식과 시험받으신 광야의 40일, 마태복음 4:1-2, 마가복음 1:12-13, 누가복음 4:1-2).

이러한 성서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정결하고 흠이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이해가 부활절을 준비하는 자세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에 따라 40을 계산하는 방법과 그 이유는 다르고, 전통적 관습을 이어가는 강조점이 다르다고 해도, 준비하는 마음과 신학적 의미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Ⅲ. 사순절에 따른 관습
사순절 기간에 중요하게 행해진 관습을 이해하는 것은, 이 절기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고 믿기에,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그 중요한 두 가지는 금식과 기도이다. 기도가 영혼의 부르짖음이라고 하면, 금식은 육신의 부르짖음이다. 육신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음식을 끊으면서 통회하며 자복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금식의 습관은 교회마다 조금씩 다르다. 모든 육류를 금하면서 생선이나 조류는 허락하는 교회, 어떤 교회는 과일이나 계란도 금하고, 빵만 허락하는 교회도 있다. 금식의 기간은 하루 종일 금식하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하루에 한 끼만을 허락하는 교회가 있고, 어떤 교회는 오후 3시까지 금식하는 교회도 있다.

중세 교회는 우유와 계란, 우유와 우유로 만든 음식을 금했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에 이어져 오면서 금요일에는 고기는 금하고, 생선만을 먹는 교인들이 많다. 특히 재의 수요일이나 성 금요일에는 한 끼만 먹든지, 적은 양의 두 끼를 먹기도 하지만, 적은 양의 두 끼가 합하여 보통의 한 끼 양보다 많으면 안 되도록 하였다.

또 하나의 전통은 기도인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잘못을 통회하는 기도이다.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심정을 정결하게 하는 모습이라고 하면, 금식과 절제는 육신의 욕망과 욕구를 단절하며, 자신을 훈련하는 수단이요, 구제는 이웃을 향해 자신이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섬김의 모습을 회복하는 훈련이다.

오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더 정결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 끊어버리기 힘든 유혹적 내용을 금하거나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바쳐 이 사순절 기간에 자신을 다스리는 훈련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위한 노력에 열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Ⅳ. 사순절은 교인의 훈련 기간으로
사순절은 어떻게 전래해 오는 전통적 행사를 거듭하느냐의 문제보다는, 이 기간에 금식과 회개와 자복의 기도, 말씀의 묵상으로 어떠한 신자의 모습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의 실제적 훈련 기간이다. 교회사에서 보여주는 내용에 따르면, 4세기 말 종려주일 행사나 로마에서 성 목요일에 참가한 신자들의 경험이 수난 주간의 기원이 되거나, 교회와 화해하는 기간으로서 절기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교인들의 훈련 기간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새 신자를 훈련시켜 세례를 베풀어 교인으로 받아들이고, 이미 세례 받은 교인들은 기도와 금식 및 자선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자신과의 관계에서 절제하는 경건훈련, 이웃에게 자선을 통해 섬김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며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뜻을 삶으로 표현하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순절의 역사와 전통적 관습을 이해하면서 오늘 한국 교회가 어떻게 사순절에 주님의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를 다음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바이다.

첫째, 사치와 낭비하는 삶에서 절제와 검소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가난하면서도 절제운동에 앞장섰고, 성미를 거두어 이웃을 도왔다. 조만식 장로는 한복의 긴 옷고름의 낭비를 막기 위해 작은 천으로 단추를 달고 입었다. 그리고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국산 장려 운동에 앞장섰다. 오늘 교회가 화려한 건물,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사치하는 삶에서 절제하며 검소한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순절의 금식만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사회정화운동에 앞장섰던 모습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둘째, 성장주의와 번영신학이 팽배하여 풍요와 부요가 축복의 전부인 것으로 오해하는 교회나 교인이 있다면, 사순절 준비기간에 바른 교인 훈련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수 백 명 수 천 명의 집단세례로 숫자 증가에 만족했던 한국 교회는 세례에 대한 바른 교육을 실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세례자의 훈련이나 준비 기간도 없이 세례라는 형식에 의하여 기독교인 증가에 보탬이 되었다면, 우리는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세례를 베풀어 기독교인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기독교인으로 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은퇴한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나의 목회 중에 얼마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양육되었는가에 대하여 나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목회와 신학’ 2009년 12월호에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교회의 신뢰도에서 2008년에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48.3%였고, 2009년에는 조금 회복되어 33.5%로 나타났다. 그 불신의 원인은 ‘교회 지도자와 교인들의 언행 불일치’가 32.2%였고, 그 불신에 회복된 원인은 ‘교회가 봉사활동을 많이 해서’가 21.7%로 조사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교인의 수가 증가되는 것도 교회가 환영해야 할 일이나, 신실한 교인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신뢰받고 책임지는 교인이 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며, 부흥에도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풍요롭게 살고, 남보다 잘 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이웃에 “복의 기관”이 되게 사는 것이 바른 축복의 이해가 아닐까.

셋째, 교파나 한 교회에 속박된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게 교인을 훈련시켜야 한다. 오늘 교회가 전도하여 교인이 되면, ‘내 교인’이 되게 하고, 교회 밖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한 지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거기서 끝나면 인간왕국의 시민은 될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가 어렵다.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도록 양육해야 한다는 말이다. 3.1운동 당시 33인의 이름을 적으면서 누구의 이름을 먼저 적어야 하느냐에 이견이 있을 때, 이승훈 선생은 “나라 위해 죽는 일인데 누구의 이름이 먼저 쓰인다 한들 무슨 관계냐”고 호령을 했다고 한다.

교회의 문을 열고 사회와 이웃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여 나 혼자의 행복이나 축복 보다는 이웃과 모두를 섬기는 겸허한 삶에서 큰 축복의 기쁨을 경험하도록, 이 사순절에 나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안중식 목사<한신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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