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4강) 말씀의 권위는 행실의 권위로 증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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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4강) 말씀의 권위는 행실의 권위로 증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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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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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당에서의 설교와 귀신 추방

네 명의 어부를 제자로 부르신 후 주님은 가버나움으로 옮겨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다(막 1:21~28). 예수님의 가르침은 중요하지만, 마태복음처럼 그 내용이 기록되지는 않았다. 마가는 여기서 특별히 주님의 가르치심에 있어서 나타난 주님의 권위에 주목하고 있다. 주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주님의 설교를 들은 청중은 그분의 가르침을 그들의 서기관들의 권위와 비교한 후 놀라워하였다. 왜냐하면 서기관들은 랍비들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성경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전달하였지만, 주님은 다른 사람을 인용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권위로 직접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가는 주님의 가르침의 권위를 더러운 귀신을 내쫓는 권위와 연결시키고 있다(막 1:23~28). 더러운 귀신들렸던 사람은 모든 더러운 영들을 대변하듯 말하였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막 1:24) 귀신들린 자는 주님을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른다. 첫째로 “나사렛 예수” 아마도 이 이름은 주위 사람들에게 익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이름,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귀신은 유한한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고, 또 성령님의 인도 아래 주님이 사탄의 시험을 이겼으므로, 사탄의 통치 아래 있는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인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만하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악의 왕국을 전면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마가복음 3장 20~30절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는 귀신들린 자의 입을 막으셨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막 1:25) 사실 이러한 명령은 당대 축사(逐邪, exorcism) 장면에서 흔한 것이다. 그러나 마가는 주님의 명령에 담긴 더 깊은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귀신들이 예수님의 신분 및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축사는 그것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외를 낳게 만들었다.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 즉 순종하는도다.” (막 1:27) 이러한 그들의 발언은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놀라움과 더러운 귀신들을 추방하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놀라움을 연결시키고 있다. 주님의 권위는 단지 가르침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 대한 명령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행동하시는 것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는다. 말씀과 행동에서 주님이 그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 보이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말과 행동 양쪽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극히 당연한 말을 구태여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존경받던 지도자들의 추락을 경험한 까닭이다. 능력의 말씀으로 많은 무리를 모아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그들이 설교한대로 살지 못했던 까닭에 순식간에 몰락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의 말에서만 권위를 찾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서 그 권위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위의 일치는 바울의 윤리적 권면에서 볼 수 있는 직설법(indicative) 명령법(imperative)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고전 5:7a) 이미 신분상 누룩이 없는 자임에도 불구하고(직설법), 고린도 교인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는 행실이 뒤따라야 하는 것(명령법)을 사도 바울을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그 신분에서 비롯되는 행실로 인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말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처신 및 행동으로 인해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밖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인해 그들이 설교한 말씀들이 무너지고 신분이 파괴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말 따로 행동 따로” 인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성경학자인 윌리암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시간이면 족하지만,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린다.” 행동으로 인해 더러워진 말씀은 그 효력을 잃고 마는 것이다. 
                                                                                         김경진 교수(백석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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