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보호에 실천적 관심을 가지는 한국교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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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보호에 실천적 관심을 가지는 한국교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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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2.3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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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한국 교회에 바란다

얼마 전 기독교단체 어느 간사가 연평도 사태 후 한국기독교가 할 일이 무엇인지 묻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는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제발 가만이나 있어라’는 글을 보내왔다고 했다.

▲ 구교형 목사(성서한국 사무총장)
슬프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회와 기독교가 갖는 인상을 대변해 주는 한 대목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꾸짖음에서 한국교회가 정말 제대로 변하기를 바라는 기대 또한 엿볼 수 있다. 새해 한국교회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담아본다.

첫째, 평화를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는 이 땅의 평화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것인지 절감하고 있다. 복잡한 정치논리를 벗어나 남북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면, 결국 함께 살아야 할 북녘백성들을 무시한 채 우리끼리 즐기는 풍요, 발전, 성장은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결방법도 그저 북한에 대한 비난, 증오, 국방력 증강, 또는 붕괴를 향한 한없는 기다림이 아니라, 서로 믿고 기꺼이 하나 되려는 진정성과 포용의 힘, 그리고 당장 뜻대로 되지 않아도 평화와 결국 통합을 향해 인내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이 아닌가?(눅 6:32~33, 롬 12:19~21)

무엇보다 교회가 앞장서야할 게 있다. 여하한 일이 있어도 굶주리는 북녘백성들을 위한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만큼은 정치적 상황에 따른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북한을 용서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의 논리보다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셨던 하나님의 심정(욘 3:11)을 앞세워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둘째, 소외된 약자보호에 실천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갈수록 가난이 대물림 되고, 구조화되어 가고 있다. 거리와 시설들은 더 화려해지고 편리해져가고 있지만, 그 곁을 걸어가는 서민들은 더욱 비참해져가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 더 크고 화려한 건물들은 늘어가지만, 정작 학생들은 등록금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더 큰 건물과 화려한 기독교행사는 즐기는 우리들끼리는 뿌듯하고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가난하고 비참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에 갈수록 정이 떨어져가는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으로 불림을 당연히 여기시는 분이므로, 지금도 우리 시대의 고아와 과부들에게 실제적인 친구가 될 때만이, 교회도 우리 사회에서 존재의미를 인정받을 것이다. 특히 갈수록 생존권과 재산권이 충돌하고 있는 농어민, 도시빈민, 노숙인들의 현장에서 교회는 제도적으로 어떤 대안을 내놓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생명과 생태를 존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말로는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상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일에는 매우 무관심하다. 당장 이득만 가져다준다면 그게 어떠한 피해를 가져다줄지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개발에 무조건 찬성하는 모습이 타종교인들에 비해서도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두드러진다.

강의 수질개선과는 정반대방향으로 나가고, 고용효과도 거의 없으며, 자연재해예방과도 관계없고, 친환경과는 더더욱 거리가 먼 무늬만 ‘4대강 살리기’인 사업도 다른 종단들은 일찌감치 그 본질을 깨닫고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오직 기독교만은 한기총을 비롯하여 찬성 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벌써 20만 마리가 넘는 가축들을 대량 살처분하기까지 이른 구제역 파문 등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생명체로 보기보다는 재산상 손익만으로 취급하는 시대풍조를 당연하게 여기며 논평하나 내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이미 침수의 위기 속에 노출된 섬나라들의 소식들을 들어도 무감각하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는 교단과 연합기구차원의 대책기구를 만들어 기독교가 먼저 지속가능한 성장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무분별한 막개발과 성장지상주의와 그 피해를 줄여나가는데 앞장 서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예수께서 가장 경계하신 물질에 대한 노골적인 추종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거침없이 교회를 사고팔고, 돈 주고 임직을 세우고, 아직도 금품선거가 횡횡한다. 이번에 한기총 신임대표회장은 템플스테이에 대한 맞불로 처치스테이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종교기관이 정부 돈을 함부로 받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모르는 무지함이다.

오래 전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새해는 보수니 진보니, 관행이니 전통이니, 교파니 교단이니 하는 습관적 논리보다는 예수께서 계셨으면 하지 않았을 것은 과감히 없애고, 그 분이라면 틀림없이 하셨을 것에 좀 더 집중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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