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특집] 빨강마차에서 따끈한 ‘감사’를 구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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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특집] 빨강마차에서 따끈한 ‘감사’를 구워내다
  • 현승미 기자
  • 승인 2010.11.19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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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마차 4호점 운영하며 희망 키우는 배회동씨

“딸랑 딸랑”.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종소리. 아직 12월도 아닌데 벌써부터 구세군의 종소리가 서울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사실 하루에 2천500개의 종이 울리고 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언의 종소리. 바로 지난 10월부터 구세군 사랑방에서 시작한 ‘빨강 마차’에서 울리는 희망의 종소리다.

실직자를 위한 소규모 창업 지원 프로젝트. 말 그대로 구세군 사랑방에 기거하는 노숙자들에게 일자리와 희망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일자리 제공 프로젝트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제작했던 휘슬러의 도움으로 지난 6월 구세군의 상징인 종 모양의 풀빵이 탄생됐다. 풀빵을 만들기 위한 틀과 이동용 빨강마차, 그리고 풀빵을 만들기 위한 천연재료, 점포 운영을 위한 위생, 친절 교육까지 구세군과 휘슬러의 공동지원으로 완벽하게 끝마쳤다. 그리고 지난 9월 17일부터 10월 7일까지 열린 서울디자인한마당으로 통해 그 맛과 친절, 청결함을 인정받고, 10월 13일 발대식과 함께 본격적인 빨강마차 운영이 시작됐다.

모두 8대. 저마다의 힘든 사연을 뒤로 한 채 빨강마차를 통해 희망을 꿈꾸고 있다. 하루 5kg의 재료. 그 안에서 300개의 종을 모두 만들어 팔면 딱 5만원이 손에 쥐어진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 돈을 종자돈 삼아 저마다 그들만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기에 하루종일 서있어야 하는 힘겨움도, 추위조차도 견딜만 하다.

“종빵은 제게 있어서 피스벨(peace bell)입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 피스벨이 미국 맨하튼까지 울리도록 열심히 일할 거예요.”

빨강마차 4호점 배회동 씨(55세. 가명). 그는 한때 알만한 유명 건설회사의 현장소장 출신으로 중동에도 다녀온 기술자였다. 보유한 기술 자격증도 여러 개. 사업실패로 인해 십수년을 방황하며 살아야했다. 그러는 동안 아내와 멀어졌고 두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어려웠다.

한 번의 실패로 쓰디쓴 좌절을 맛본 그는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었다. 온 세상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듯 했다. 결국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서 자신을 잃어갔다.

그러다 사랑방에 오게 됐고, 그 안에서 다시 꿈을 꾸게 됐다.

“꿈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모두가 저희를 외면할 때 사랑방 원장님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 주셨죠. 이런 아이디어를 내주신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죠.”

1998년 겨울, 구세군에서 사랑방에 붕어빵 장사를 지원한 적이 있었다. 비록 한시적이었지만, 사랑방 원장 백승렬 사관이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금의 ‘빨강 마차’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안에서 8명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빨강마차에서 구워내는 풀빵의 구세군의 상징인 '사랑의 종' 모양이다.
“이렇게 서기까지 대기업 신입사원 수준의 강도 높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길거리 음식은 우선 청결이 제일이잖아요. 그리고 작지만, 하나의 사업체이기 때문에 경영방식도 전수받았죠. 풀빵 만드는 방법과 노하우부터 실전, 정신적 자세, 소양 교육, 친절교육까지 힘들긴 했지만, 희망이 있었기에 기쁘게 할 수 있었죠.”

노숙자가 만드는 빵이라는 편견 때문에 사람들이 꺼려 할까봐 지금도 수시로 청결에 신경을 쓴다는 배회동 씨. 그는 재료 역시 휘슬러 요리팀에서 직접 연구하고 마련한 천연재료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어떤 풀빵보다 맛과 품질 면에서 뛰어나다며 사장님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사실 지금 빨강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예요. 사업에 실패한 사람, 노름만 하다 온 사람,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던 사람들까지 정말 밑바닥까지 다 경험한 사람들이예요. 하지만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중요하죠.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구세군을 통해 이렇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지요.”

불교, 천주교는 물론 경험해보지 않은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배회동 씨. 그는 사랑방에 들어오고부터는 매일 아침 기도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신실한 믿음이 있다고는 말 못해요. 아직은 비록 형식적이지만, 꼭 잊지 않고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형식이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곳에 와서 감사하는 법도 알게 됐어요.”

사업이 승승장구할 때는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했다. 사업에 실패한 후에는 스스로 세상에 등을 돌렸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시련이 왜 자신에게 닥쳤는지 세상모두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구세군 사랑방에 와서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위해 함께 일해주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삶 가운데서 감사가 넘쳐났다.

“아빠가 돼서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지 못했는데, 너무 잘 자라줘서 그것도 너무 감사해요. 큰 아들은 해병대 제대 후에 돈 벌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둘째는 올해 대학원생이 됐죠. 아빠는 방황하고 등록금도 제대로 준비해주지도 못했는데, 각자 꿈을 갖고 삶을 개척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예요.”

그런데 빨강마차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지난 서울디자인 한마당에서 이틀만에 700만원을 매출을 올리고,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빨강마차를 세울 장소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사실 여긴 실습생들을 위한 자리예요. 저는 원래 목동에서 빨강마차 4호점을 개업했는데, 장소 기부자와 좀 문제가 생겨서 임시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요.”

애초 빨강마차 출범 당시 10호점 개점이 준비됐다. 그러나 장소문제로 8곳이 개점했고, 그 중 2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슷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구세군 사랑방이 있는 충정로와 함께 왕십리, 망우동, 목동, 홍제동 등 장소 기부자가 나서주었기 때문에 개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법적 효력이 없이 말 그대로 기부다. 언제든 기부자가 원치 않으면 장소를 내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빨강마차가 들어서기 위해 겨우 한 평 남짓한 자리가 필요하지만, 이미 몫 좋은 자리는 붕어빵이나 계란빵 등 다른 이들이 자리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자릿세를 내기는 커녕 장소기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선뜻 자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풀빵을 개발하고, 친절 서비스를 제공해도 빨강마차를 세울 곳이 없다면 화덕에 불조차 지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방에서 저희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고 있는데, 쉽지 않은 일이죠. 다른 이들이야 불법을 행하면서 몫 좋은 자리를 찾아나서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잖아요. 이럴때 서울시가 나서준다면 큰 힘이 될텐데요….”

추운 날씨도, 하루 종일 서 있는 것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던 배 씨가 장소 이야기를 꺼내면서 처음으로 말끝을 흐린다. 배 씨 뿐만이 아니다. 빨강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이들도 법적 효력이 없는 이상 언제 자리를 내줘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가 미처 살피지 못한 이들을 구세군 사랑방이 자청해서 하고 있는 이때에 정부가 조금만 나서준다면 얼마든지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배회동 씨.

기자와 만난 전날 겨우 열 일곱 개를 팔았다는 배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게 하심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심에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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