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빠진 한기총 법규개정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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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빠진 한기총 법규개정 실체는?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0.06.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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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안건 사라진 채 ‘기득권과 숨은 권력’에 힘만 실어

도덕적 자정장치 스스로 폐기...부정선거 막기 역부족
개혁대상 1호로 꼽혔던 총무협 오히려 권한만 강화돼


창립 후 20년의 세월을 보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정관에 ‘성년’이라는 문구까지 첨가한 한기총은 결코 만만한 조직이 아니었다. 연말 선거때마다 단골 소재로 거론되는 한기총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비리의 온상’, ‘권력집단’, ‘부정선거’ 등 한기총을 나타내는 수많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이광선 대표회장은 개혁 의지를 불태웠지만 오히려 결과는 기득권과 권력의 강화, 부정의 가능성 증대 등 더 심각한 허점을 남기고 말았다. 지난 11일 실행위원회를 통과한 ‘한기총 3대 개혁안’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최초 발의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대 개혁안은 △정관개정안 △운영세칙 △선거법 등을 일컫는다. 지난 4월 한기총 변화발전위원회가 공개한 3대 개정안은 ‘개혁’과 ‘파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안이었다.

최초 개정안에는 대표회장을 총회에서 선출하되 출마 기준을 교단별로 3개 군으로 나누고 간접 선거인단 선출방식을 적용키로 했다. 여기에 대표회장 임기를 70세로 규정하고 도덕적 기준, 즉 사회법상 저촉이 없는 자로 강화했었다.

그러나 11일 최종적으로 올라온 안건에는 도덕적 기준이나 부정, 타락 선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변화발전위원회가 3개월을 고심 끝에 내놓았던 최초의 개정안을 사라지고 임원회에서 2차례, 실행위원회에서 1차례 등 총 3차례 수정을 거쳐 알맹이는 모두 사라진 ‘쭉정이’ 같은 개정안이 올라온 것이다.

11일 실행위원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의 핵심은 △대표회장 임기 2년 단임 및 대표회장 권한 강화 △총무협의회 회장 임원회 의결권 부여 △대표회장 선거 실행위에서 총회로 이관 △상임회장 등 방대한 조직 확대 △상설위원회 운영 △금권선거 예방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 전체 폐기 △대표회장 출마 자격의 모호한 개정 등이다.

대표회장 자격의 경우 당초 임기 1년에 연임 규정을 고수하다가 2015년부터 2년 단임을 적용키로 했었다. 하지만 수차례 논란 끝에 대표회장에 대한 자격은 모두 사라지고 2년 단임이라는 임기연장만 결정됐다. 권력의 강화를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년 규정도, 도덕성 검증장치도 모두 사라졌다.

심지어 선거관리규정 제2조 후보의 자격에 있어서 과거 ‘회원 교단 또는 단체에 소속으로 소속 교단이나 단체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회원교단의 총회장이나 회원단체의 회원을 역임한 자’로 개정됐다. 교단출마의 경우 총회장 출신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과거 총회장 출신이 아닌 후보가 선거전에 나섰던 것이 빌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단체의 경우 단체장이 아닌 ‘회원’으로 규정을 약화시켰다. 이 역시 일각에서는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개정이라는 소리가 나돌고 있다.

문제는 교단 총회장이 아닌 사람도 한기총 회원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특유의 정치력으로 대표회장 후보 출마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자격을 강화해 후보 검증을 철저히 하겠다는 당초 목적은 사라졌다.

대표회장 선거가 총회로 넘어간 것도 큰 골칫거리로 꼽히고 있다. 처음 예상은 총회에서 뽑되 선거인단 간접선거 방식을 선택해 ‘금권선거’를 막아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조항이 삭제된 채 총회에서 총대들에 의한 직접 선거가 되고 말았다. 한기총은 투표인수가 늘어나면 금권선거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총대들이 느끼는 고민은 다르다. 대표회장 선거가 더 힘들게 전개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형교단의 경우 1년마다 총대를 바꾸게 된다. 하지만 군소교단의 총대는 거의 변화가 없다. 2년에 한 번씩 대표회장 선거가 치러질 경우 교단 안에서는 선거가 있는 해에 총대에 뽑히기 위한 눈치작전이 예상되며 결국 붙박이로 남아 있는 군소교단 총대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이번 법안 개정과정에서 개혁대상 1호로 꼽혔던 ‘한기총 총무협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선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한기총 ‘총무협’을 무시하고는 대표회장 선출이 어렵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교단 총무들의 카르텔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어 매년 대표회장 선거때마다 총무협 해체 혹은 역할 축소에 대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법규 개정과정에서 ‘총무협’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재확인했다. 임원회와 실행위원회 등 수차례 개정안을 문제 삼은 회의에서 누구도 ‘총무협 의결권’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원정리와 ‘하후상박’ 구조의 총대 및 실행위원 수 조정도 수포로 돌아갔다. 회비 납부와 교단의 규모에 비해 대형교단이 군소교단에 비해 불리한 구조를 안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은 이 역시 손대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결국 이번 개정안은 ‘상처’는 그냥 둔 채 ‘병’만 키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한 교단 관계자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조차 스스로 폐기해버린 한기총 법규개정은 결국 한기총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 한기총은 ‘사후약방문’격 처방이 난립할 수밖에 없는 우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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