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만에 기억해낸 올링거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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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만에 기억해낸 올링거의 자녀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6.0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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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묘원, 올링거 선교사 기념비 제막

“이곳에 50개가 넘는 어린아이 묘소가 있다. 선교사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왜 여기에 묻혀있는지 물어야 한다….”

107년 만이다. 올링거 선교사의 두 자녀로 추정되는 무덤에 묘비가 기념비가 세워졌다. 낯선 땅 한국에서 10살 남짓한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올링거 선교사의 두 자녀 버티와 윌라를 기념하는 데 한국 교회는 1세기를 보냈다. 그것도 올링거 선교사 4대손의 요청에 의해서다.

▲ 1세기 만에 올링거 선교사의 자녀로 추정되는 묘지 위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지난해 11월 국제선교단체인 SIM 소속 미국인 선교사 봅 아놀드 부부가 양화진선교사묘원에 방문한 후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글을 남겼다. 우연히 이 블로그에 접속했던 올링거 선교사의 4대손인 데이비드 올링거는 자신의 할아버지 형제들이 양화진에 묻혀 있다는 슬픈 사연을 봅 아놀드 선교사에게 전했다.

이후 양화진문화원은 각종 사료들을 뒤져 한국 선교역사 전문가인 클라크 교수를 통해 ‘헤론 선교사 옆에 올링거 선교사의 자녀들이 묻혔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화진선교사묘원은 무표(Unmarked)의 두 봉분 H-19, H-20 표지석이 있는 곳을 올링거 선교사 자녀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그 옆에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 사실을 접한 올링거 4대손 데이비드 올링거 부부가 3일 한국에 왔다. 기념비 제막식 참석을 위해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경비를 제공한 것이다. 이날 제막식에는 올링거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조선셩교서회의 명맥을 잇고 있는 대한기독교서회 관계자들과 그가 속한 감리교, 그가 개척한 내리교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날 ‘한 알의 밀알’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맡은 강병훈 목사(100주년사업회 이사장)는 “125년 전 처음 선교사가 들어온 후 한국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했고,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됐다”며 “이 같은 성장과 부흥에는 올링거 선교사의 어린 두 자녀의 죽음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교회는 100년이 지나도록 이것이 누구의 무덤인지 알지 못했다”며 “한 알의 밀알의 희생을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정지강 목사는 “복음 전하는 사명에 순종해 낯선 땅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은 올링거 선교사의 슬픔을 기억하게 하소서”라며 “기독교 문화 창달에 헌신한 그를 기억하며, 한국 교회가 기독교적 가치 위에 세워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 올링거 선교사의 4대손 데이비드 씨가 묵묵히 설명을 듣고 있다.
올링거 선교사의 후손인 데이비드 올링거 씨는 “올링거 선교사의 네 자녀중 하나인 거스 올링거 할아버지를 통해 두 동생을 잃은 슬픔을 많이 전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올링거 증조 할아버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영광을 받는지를 후손들에게 이야기하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데이비드의 10살 난 딸 알렉산드라 올링거는 작은 곰인형과 함께 편지를 건냈다. 1세기 전 비슷한 나이에 타국에서 생을 마친 믿음의 선조들을 천사의 날개를 단 그림으로 위로했다. 기록에 의하면 올링거 선교사의 두 자녀, 12살짜리 아들 버티와 9살짜리 딸 윌라는 조선에서 사망한 최초의 서양 어린이다.

백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는 “이곳 양화진에 선교사와 외국인 500여 구의 시신이 묻혀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100여 구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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