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리고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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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그리고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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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3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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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의왕중앙교회>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고, 온 세상이 생명의 기운으로 약동하여 새순이 돋을 때 즈음, 주님 당하신 고난의 십자가 그리고 그 십자가의 열매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영광을 만나는 부활의 계절이 있다.

도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반대 개념의 두 단어, 십자가와 부활 그 두 낱말이 성경에서는 늘 같이 있음을 발견한다. 고난의 열매로 십자가가 세워지고, 그 십자가의 결론이 죽음이 아니라 부활로 나타나는 것은 놀라움이고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잔혹함과 수치 그리고 끔직한 고통 그 자체에도 있겠으나 십자가의 결론이 절망의 최상의 것, 죽음이라는 절망이고, 일어 설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완벽한 공포요, 두려움의 극치요, 회복 불능의 절망의 완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아닌 십자가라면 그 것을 즐길 이유까지는 없더라도 수술대에 눕는 심정으로라도, 그 끔찍한 것이라도 감당하겠다고 나설 자가 혹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이란 명제 앞에서 허세를 부릴 자가 그 어디 있으며, 에라 모르겠다하고 덤빌 자가 혹 있겠는가. 그런데 십자가를 죽음으로 이끌지 않고, 그 결론을 언제나 부활로 이끌고 있는 성경을 보고, 어찌 놀라움으로, 경이로움으로 보고 대하지 않을 수 있는가.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復活), 이 얼마나 경이로움이고, 소망과 환희의 메시지인가.

인간은 죽는다. 인간은 십자가가 아니라도 죽는다. 세상에는 죽음 이후에 관한 온갖 설과 주장과 생각이 있지만 사실 죽음 뒤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들이 있어 그곳의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말 하여도 대항하거나 항거할 말을 찾지 못한다. 믿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단호하고도 객관적이며 분명한 해답을 가졌다. 우리는 결코 죽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죄의 값은 죽음이므로 그 죽음은 죄로 인하여 왔고, 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단 한사람도 없음을 망설임 없이 선언한다.

성경은 필연적 죽음에 관하여만 말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이기는 능력과 권세에 대하여도 말씀하신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인류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로서 죽음을 당하셨다. 구원자로서의 그 십자가의 죽으심은 필연이다. 죄의 결과로 온 죽음에 대하여 다른 것으로는 값을 치룰 수가 없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만이 죄의 결과로써의 죽음을 물리치고, 정복할 수 있으셨기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필연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 거룩하신 죽음이라도 죽음으로 끝이었다면 죄의 값으로 온 죽음을 이기셨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으랴. 따라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필연이라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필연 그 이상의 필연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 십자가가 나와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그 십자가와 나와의 관계에 따라 필연으로 연결 되어 있는 부활과 나와의 관계가 밝혀질 것이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가 나와 관련하여 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없는 부활은 없다. 혹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그런데도 나는 십자가 없이, 죽음 없이 부활을 가지려고 하고, 누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도 십자가 아니고 당연히 부활도 부활이지 않다.

매년마다 고난절과 고난절 뒤이어 오는 부활절이지만 고난의 날에 신파조의 값싼 눈물은 있어도 진정 죄와 죄의 고백 앞에 엎드린 고난은 없으며, 사람들끼리의 길거리잔치 같은 부활의 잔치는 있으나 진정한 부활의 능력과 변화로 오는 새생명의 역사가 있는가.

이 시대적인 부활의 의미를 나름대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지나쳐 부활의 실재성은 문제가 되지 않고, 그 부활이라는 의미 많을 인본주의 입장에서 다시보고 적용하려는 훌륭하신 분들의 움직임을 주께서 어찌 보실 거나. 진정 죽어야 사는 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한 진리 앞에서 내가 죽지 않고 어찌 살랴.

진정 사는 길은 철저하게 죽어지는 것이며, 한 알의 씨앗으로 산화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날마다 살기만 하고 죽을 줄 모르는 나에게 죽음으로 누리는 부활이 언제쯤이나 나를 품에 앉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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