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와 가톨릭 ‘교회론’에서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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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와 가톨릭 ‘교회론’에서 엇갈려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0.03.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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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신학회 ‘정기학술발표회’에서 최주훈 교수 주장

 


“개신교와 로마교회 간 에큐메니칼 대화에 있어 일치점을 찾지 못하는 부분은 ‘칭의론’이 아니라 ‘교회론’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개혁신학회(회장:권호덕 교수, 백석대)가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백석대 신학대학원 목양동에서 가진 ‘제83차 정기학술발표회’에 발표자로 나선 최주훈 교수(루터대, 조직신학)가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무엇이 루터적인가’란 주제로 발표한 최 교수는 “16세기 당시 개신교와 로마교회 간 논쟁의 역사를 진지하게 고려해 본다면 ‘칭의론’이라는 대전제가 아니라 칭의론을 구성하고 있는 복음의 말씀과 성례전에 관한 각각의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최 교수는 1518년 추기경 카예탄과 루터가 논쟁을 벌였던 아우스부르크 청문회를 예로 들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죄선언과 성례전의 권위는 어디로부터 오는가’의 문제로 출발했고, 이에 카예탄은 공의회와 교황, 사제의 권위를 주장한 반면, 루터는 오직 약속의 말씀과 신앙으로부터 온다고 대립각을 세웠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말씀과 신앙의 관계는 곧 하나님과 인간, 성서와 전통, 사제와 교회라는 각각의 하부 논쟁점들을 첨예화시켰다”며 “이와 같은 신학적 대립각은 개혁신학의 사상과 로마교회적 정체성을 단면적으로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의 토대는 ‘약속’에 대한 신학적 대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가장 루터적인 발견은 ‘약속’에 대한 발견이며, 이것이 루터에게 ‘복음적’인 것이 된 것이다. 이 복음은 개혁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단서가 됐다.

하지만 1518년부터 1520년까지 신학적 대립이 점차 격화되었다는 사실은 서로간의 감정싸움이나 일회성에 끝나는 사회적 사건으로 볼 수 없다.

최 교수는 “이 대립은 산발적 주장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시점, 또는 개념의 대 발견을 계기로 해 개혁의 불길이 타올랐다”며 “전혀 새로운 신학적 강조점이 출현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종교개혁의 지속성이 고수될 수 있었다”고 피력했다.

이어 “약속 개념 위에서 루터의 전체 신학을 바라볼 때, 그의 칭의론, 성례전 신학, 만인 사제설, 교회론 등이 왜 개혁적인지 설명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루터는 이러한 ‘약속’의 신학적 개념을 통해 교회와 성례전에 대한 개신교적 사상과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혁신학’이라는 개신교회의 정체성을 추구해갔다.

최 교수는 “루터의 시대와 현대 개신교회의 시대는 5백년의 시대적 간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처한 현실은 그리 다르지 않다”며 “한국 개신교회가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가장 우선적이고 필요한 것은 정체성의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정체성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는 약속의 기반 위에 바로 서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며 “오직 하나님만이 주체가 되고, 그리스도의 약속이 기반되는 거룩한 성도의 사귐이 한국 교회에 풍성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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